진심과 현금 사이, 누군가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제 오늘, 오랜만에 시골에 다녀왔다.
어르신들이 사시는 마을.
산과 밭, 그리고 바람만 지나는 그곳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밥상앞에서 할머니가 툭 던진 말이 마음에 걸렸다.
“중장비가 올라온대서, 사람들이 다 막으러 갔어.
마을을 위해서. 먼지 같은 게 많이 나면 안 되니까,
우리가 거기 가서 서 있었지.”
나는 평범한 마을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 말이 이상했다.
“…그랬더니, 3만 원을 주더라고.”
처음엔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드러눕고 서 있으면 돈을 준다고요?
하지만 말의 흐름은 자연스러웠다.
할머니는 정말 ‘마을을 위한 일’이라 믿고 계셨다.
먼지가 날리는 걸 막기 위해, 공사가 강행되는 걸 막기 위해, 마을 사람들 몇 명이서 도로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손에 3만 원을 쥐여줬다.
엄마를 통해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니,
사실 그 공장은 이미 마을과 협의가 끝난 상태라고 했다.
주민 동의도 받았고, 마을 대표나 이장이 나서서 조건도 조율했고,
어느 정도 정리된 사업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왜 거기 있었을까?
누가 그 자리에 모이라고 했을까?
누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그 자리에 세웠을까?
왜 그 ‘선의’에는 현금이 따라붙었을까?
내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이용당했다’는 감정이었다.
할머니는 진심으로 마을을 걱정했고,
누군가 그 마음을 이용했다.
자발적인 척, 의로운 척,
사람을 모아 서게 한 다음 조용히 3만 원을 건넨다.
이 구조는 참 익숙하다.
어디에나 ‘대표’는 있고, 정보는 그들 중심으로 흐르고, 어르신들은 그 흐름에서 조금씩 비껴나 있다.
“가서 서 있자.” “마을 지켜야지.” “그래, 그래.”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되는 일들.
그 모든 과정이 끝난 뒤, 주머니엔 3만 원이 들어온다.
나는 그 돈의 의미를 생각했다.
‘수고비’인가?
‘입막음’인가?
‘형식’인가?
아니면, 그저 3만 원이면 된다고 여긴 것일까?
할머니는 다음엔 안 가겠다고 했다.
내가 그 말을 끌어냈다.
하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마을을 아꼈고,
진심이었고,
그 손을 잡고 현장에 간 사람이 틀렸을 뿐이었다.
내가 정말 두려운 건,
그 구조가 아직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보를 쥔 사람이, 선의를 쥔 사람을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것.
그들이 받은 건 3만 원이고,
누군가는 그 장면을 통해 수천만 원어치의 이득을 챙겼을지도 모른다는 것.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 손을 쥐여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 3만 원은,
진심의 값이었을까.
아니면, 침묵의 대가였을까.
누군가는 마음으로 섰고,
누군가는 계산으로 움직였다.
그 사이의 3만 원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