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지도, 각자의 걸음으로 나아가는 삶에 대하여
요즘 아내와 산책을 자주 한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걷다 보면 대화도 잘 되고 기분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목적 없이 걷다 보면, 가끔은 낯선 동네에 들어서기도 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길을 잃는다.
그러면 우리는 각자 핸드폰을 꺼낸다.
지도 앱을 켜고 어디쯤인지 확인해보는데
이상하게도 서로의 지도를 보면, "전혀 다른 화면"처럼 느껴진다.
“여기잖아.”
“어? 아니야. 이렇게 가야지.”
“그건 네가 지도를 돌려서 그렇지…”
처음엔 그냥 설정이 다르구나 싶었다.
나는 지도가 늘 북쪽을 위로 두고 나오는 게 익숙한데,
아내는 자신이 걷는 방향이 위로 오도록 지도를 돌려서 본다.
같은 장소, 같은 골목인데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다른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왜 우리는 서로의 지도를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워할까?”
그래서 GPT에게 물어봤다.
“혹시 남자랑 여자가 지도를 다르게 본다는 연구가 있어?”
그랬더니 정말 그런 내용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는 ‘에고센트릭’이니 ‘알로센트릭’이니 하는
심리학 용어도 등장했다.
처음엔 말이 어려워서 헷갈렸는데,
요약하면 이런 거다.
- 나 같은 사람은 ‘북쪽이 항상 위’여야 안심이 된다.
- 아내 같은 사람은 ‘내가 지금 바라보는 방향’이 위로 오면 이해가 잘 된다.
하나는 절대 방향 중심, 하나는 자기 중심 방식이라고 한다.
말을 듣고 보니, 딱 우리 얘기였다.
게다가, 많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전체 지형을 머릿속에 그리는 데 익숙하고
여성은 주변의 구체적인 랜드마크를 기억하는 데 더 강하다고 했다.
조금 더 찾아보니,
이런 공간 인식 차이는 ‘멘탈 로테이션(mental rotation)’이라는 개념과도 연결된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지도를 돌려보는 능력.
북쪽을 고정한 채, 방향을 맞춰보는 습관.
어떤게 꼭 잘났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다른 전략인 거다.
그걸 알게 되면서부터는
아내가 지도를 돌려 보는 모습도,
예전처럼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같은 방향을 걷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길을 걷는데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지도를 본다.
내가 북쪽을 찾는 동안,
아내는 지금 바라보는 길을 본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판단하면서도
우리는 결국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서로 다른 지도를 들고서.
음...
어쩌면, 인생이라는 길엔
같은 지도가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