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에이스가 망가지는 과정

일 잘하는 사람이 먼저 지쳐가는 이유

by 잡생각 수집가

회사엔 누구나 아는 에이스가 있었다.
그의 이름을 직접 말하지 않아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그가 앉아 있는 모습은 늘 분주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전화를 받고, 옆자리에서 건네는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하곤 했다.
늘 바쁘지만 여유 있어 보였고, 팀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그가 나서서 정리를 했다.
“저 사람이 있으면 팀은 안 무너지겠구나.”
우리 팀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회사를 떠났다.
더 큰 무대, 더 높은 연봉, 더 멋진 직함.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스카웃 제안이 안 오는 게 이상한 거라고.

우리는 직접 볼 순 없었지만, 그의 소식은 늘 들려왔다.

업계 사람들의 입을 통해, 혹은 가끔 밥을 먹으며 그가 흘리는 말들을 통해.
처음엔 “들어가자마자 프로젝트 속도가 몇 배는 빨라졌다더라”는 소문이었다.
리더가 됐지만 여전히 본인이 직접 뛰었고, 보고서는 이틀 걸릴 게 반나절 만에 나왔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아, 역시 에이스구나” 싶었다.

그의 주변은 다시 빛나고 있는 듯했다.
새 팀원들은 처음엔 놀라워했다고 한다.
“저 사람이 있으면 다 가능할 것 같아.”
그런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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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달라졌다.
“일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원래 다른 부서에서 하던 애매한 업무까지 그의 팀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성과를 내기 위해 경계선을 허물었다.
“우리가 하면 더 낫잖아?”라며 그레이존의 일들까지 당겨왔다.
고객 대응 초안, 다른 부서에서 미뤄두던 업무까지.
그의 손에 들어가면 빠르게 해결됐고, 위에서는 만족했다.


하지만 팀원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그 일은 추가 노동이었다.
“왜 우리가 이걸 해야 하죠?”라는 불만이 쌓였고, 반발이 시작됐다.
밥자리에서 그는 씩 웃으며 말했었다.
“내가 잘하는 게 꼭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나는 그 말의 무게를 그때는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달라졌다.
예전엔 활짝 웃으며 “제가 해볼게요”라고 했던 사람이,
이젠 차갑게 “그건 우리 업무 아닙니다”라고 잘라냈다.
처음엔 팀원들을 지키려는 선택 같았다.
과도한 업무를 막아주는 리더로 보였다.




하지만 점점 그 태도는 단호함을 넘어 냉정함으로 바뀌었다.
다른 부서에서 도움을 청하면, 예전 같으면 뛰어갔을 사람이
“규정에 없습니다. 담당 부서에 요청하세요.”
짧게 말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예전엔 눈빛이 반짝였다.
“더 잘해보고 싶다”는 열정 같은 게 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의 눈은 피로와 방어로 채워져 있었다.
빛나던 사람이 점점 회색으로 바래가는 과정, 나는 소문과 대화를 통해 옆에서 보는 듯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그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에이스’라 불리지 않는다.
그저 다른 리더들처럼, 칼같이 규정만 지키며, 조직의 톱니바퀴 속에 들어가 있다.
예전의 반짝임은 사라지고, 회의실 안에서는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나빠진 걸까?
아니면 조직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걸까?

나는 여전히 헷갈린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다.
빛나는 사람을 끝까지 빛나게 두는 건, 개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도 겹쳐 보였다.

회의 때마다 고집을 부리고, 작은 일에도 사사건건 따지는 타팀의 팀장, 차장들.

늘 답답하고 피곤하게만 느껴졌던 그들도, 어쩌면 예전엔 지금의 그 사람처럼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던 건 아닐까.

누구보다 빠르게 보고서를 쓰고, 먼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던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방어와 규정만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역시 지쳐가며 선택한 생존 방식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 옆의 에이스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아직 반짝이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회색으로 물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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