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꾸 서열을 매길까
웹툰 작가로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같이 작업하던 그림 작가님이 어느 날 다른 글 작가와 협업을 하게 됐다.
그 글 작가는 드라마 출신이었다.
이야기를 듣는데, 묘하게 불편한 지점이 있었다.
드라마 작가라는 타이틀 때문이었을까. 그는 마치 ‘내가 더 높은 단계에 있다’는 듯한 태도로 접근했다.
웹툰은 컷 단위로 호흡을 조절하는 매체다.
짧게 끊어야 긴장감이 살고, 독자의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드라마 대본을 쓰듯, 한 화에 200컷이 넘는 이야기를 밀어 넣으려 했다.
“이렇게 가야 한다. 이야기는 원래 이렇게 길게 끌어야 힘이 나온다.”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 순간 묘한 생각이 들었다.
같은 창작자임에도 불구하고, 급을 나누고 있다는 기분.
‘드라마가 더 위고, 웹툰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거다.’
그가 직접 말한 건 아니었지만,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소설과 시를 비교하면서, ‘소설은 더 대중적이고, 시는 좀 더 고상한 것 같다’ 같은 마음을 은근히 품었던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mindhoarder/16
사실 이런 구분은 우리 일상에도 널려 있다.
가요와 오페라.
만화와 문학.
유튜브 영상과 영화.
모두 같은 ‘표현의 장르’인데, 우리는 본능처럼 급을 나눈다.
더 극단적으로는
“저사람처럼 되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지.”
어릴 때 부모님들이 자주 하던 말도 그렇다.
문제는, 그런 말 속에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든 묵시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환경미화원은 불쌍한 직업이고, 남들이 대신 해줘야 할 일이라는 전제.
하지만 현실을 보면, 이미 안정적으로 잘 살아가는 환경미화원도 많다.
우리가 괜히 동정하면서 스스로 개념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진짜로 우리는 모두를 편견 없이, 완전히 평등하게 봐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부터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두를 똑같이 존중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오히려 조금 가식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급을 나누는 건 일종의 구조다.
돈에 따라, 수요와 공급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등급이 매겨진다.
냉정하게 보자면, ‘급을 나누지 않는 사회’는 그냥 이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마냥 “모두 평등해”라고 위선적으로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대놓고 “급이 다르다”며 서열을 강요하는 것도 불편하다.
어쩌면 답은 그 중간에 있을지도 모른다.
급이 있다는 걸 인정하되, 그 급이 인간 자체의 가치를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것.
직업이나 장르의 ‘등급’과, 사람 자체의 ‘존엄’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
오늘의 글도, 사실 결론을 잘 모르겠다.
웹툰과 드라마, 가요와 오페라, 청소와 연구직.
급을 나누는 게 당연한 건지,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나누지 않으려 애써야 하는 건지.
다만 분명한 건, 누군가를 깔보는 순간 그 시선이 언젠가 내게도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누구의 급을 속으로 나누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