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은 SNS에서 배운 것들

내 얘기만 쓰려 했지만, 남의 글에서 길을 찾았다

by 잡생각 수집가

시간이 조금 흘렀다.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고 들떠 있던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풍경 속에 서 있다.

전에는 브런치 작가승인 후 내 심경을 적었었다.


https://brunch.co.kr/@mindhoarder/14


그때는 막 승인받은 직후라 모든 게 낯설고, 통계와 조회수 앞에서 흔들리던 순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웃기다.

작가 승인된 지 고작 사흘 된 애송이가, 글쓰기의 본질을 놓칠까 봐 괜히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으니.
그 시절의 나는 숫자 몇 개에 흔들리며, 글이 아니라 통계창을 더 오래 바라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바로 ‘맞구독’이었다.

처음엔 이 문화가 못마땅했다.
서로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구독만 하고, 기계적으로 좋아요만 눌러주는 게 뭐가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나는 적어도 내 글이 그렇게 소비되는 건 싫었다.


그래서 나만의 원칙을 세웠다.
누군가 나를 구독했다면, 나는 그 사람 글을 억지로라도 끝까지 읽자.
읽지도 않고 누르는 좋아요는 하지 말자.
적어도 그 사람의 문장을 한 번은 곱씹고, 공감할 만한 대목을 찾아내자.


사실 구독에 관해서만큼은 나는 은근히 단순하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굳이 구독 버튼을 눌러줬다면, 그 마음이 있는 한 나는 무조건 되돌려 구독한다.
글이 존재하기만 하면, 일단은 읽어보고 구독한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쉽지 않았다.
현학적인 글, 뜬구름 잡는 글, 아무렇게나 끄적인 듯한 짧은 글.
나와 맞지 않는 글들을 억지로 읽어내려가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했다.
때론 글이 너무 어려워 이해가 되지 않았고, 때론 공감이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내려간 뒤 눌러주는 좋아요 한 번에는, 나름의 진심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과정에서 조금씩 다른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싫어하던 시를 읽으며 화자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됐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는 시 해석이 그렇게 지루했는데, 지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에세이를 읽으며 작가의 감정에 공감했고, 기술적인 문서를 읽으며 의외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
어쩌면 억지로라도 읽어내려간 덕분에, 내가 모르는 문장 세계가 조금은 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억지로 듣던 교양 수업에서, 뜻밖의 배움을 얻는 순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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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맞구독이 단순히 ‘교환’이라고만 여겼는데, 어쩌면 이건 시야를 넓히는 통로일 수도 있겠다고.
내 취향과 꼭 맞지 않아도, 다른 이의 언어를 억지로라도 읽다 보면 결국 내 안의 언어가 넓어진다.

그리고 가끔은, 내 마음과 꼭 맞닿는 글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의 희열은, 억지로라도 읽어온 시간들이 있었기에 더 크게 다가왔다.

마치 무수한 잡음 속에서 우연히 딱 맞는 주파수를 찾아낸 순간처럼.


처음엔 불편하고 가식적으로만 보였던 맞구독 문화가,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 작가들의 작은 SNS 같은 세계에는, 예상치 못한 인사이트와 발견이 숨어 있었다.
억지로라도 남의 글을 읽는 그 시간들이, 결국 내 사고를 조금씩 확장시키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갈팡질팡한다.
조회수를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통계창을 열어보고, 또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확인한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나부터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과정이 나를 조금은 넓혀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어쩌면 글쓰기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내 얘기를 쓰면서도, 결국 남의 얘기에 영향을 받고, 다시 그게 내 얘기로 돌아오는 순환.
브런치는 내 글을 보여주는 무대이자, 동시에 남의 무대를 기웃거리며 배우는 교실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누구를 의식하지 않고, 하지만 또 누군가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한 채.
그 어정쩡한 줄타기 속에서, 그래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믿음을 붙잡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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