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문장들에 대하여
요즘 SNS를 보다 보면 유독 자주 마주치는 말이 있다.
“지능이 낮을수록 맥락보다 단어에 집중한다.”
처음 이 문장을 봤을 때, 솔직히 말하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댓글창을 떠올리면 쉽게 납득이 가기 때문이다.
긴 글은 읽지 않고, 특정 단어 하나에 꽂혀서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 장면.
말의 전체 흐름보다는, 마음에 걸린 단어 하나를 붙잡고 끝까지 늘어지는 논쟁들.
나 역시 그런 장면을 수없이 봐왔고, 때로는 그 한가운데에 있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은 그럴듯하다.
현상을 잘 요약한 문장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말을 몇 번 더 보다 보니,
이 문장이 설명이라기보다는 기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은 상대를 설득하지 않는다.
맥락을 다시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 줄로, 상대를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정리해버린다.
그 순간부터 대화는 이어질 필요가 없어진다.
논쟁은 더 이상 무엇을 말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대화할 자격이 있느냐의 문제로 바뀐다.
이 점이 이 문장을 굉장히 강력하게 만든다.
논쟁에서 가장 피곤한 일은 설명하는 일이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떤 전제를 두고 말했는지,
상대가 오해한 지점이 어디인지 다시 풀어야 한다.
시간도 들고, 감정도 소모된다.
반면 이 문장은 그런 과정을 모두 건너뛴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수고 대신,
상대를 이해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그때 문득, 예전에 들었던 말 하나가 떠올랐다.
“배려는 지능의 영역이다.”
이 말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배려를 칭찬해서가 아니었다.
이 문장은 배려하는 사람을 따뜻하게 그려주기보다는,
배려하는 사람을 비난하기 어려운 위치로 옮겨놓았다.
누군가를 향해
“너는 착해서 손해 본다”
“왜 그렇게까지 배려하느냐, 호구 같다”
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곧 상대를 덜 똑똑한 사람으로 만드는 말이 되어버린다.
이 문장은 배려를 미덕으로 격상시켰다기보다는,
배려를 공격하던 언어를 봉쇄했다.
그래서 이 말 역시,
사람을 더 이해하게 만든다기보다는
특정한 종류의 논쟁을 애초에 닫아버리는 역할을 했다.
이쯤에서 깨닫게 된다.
“지능이 낮을수록 맥락보다 단어에 집중한다”는 말과
“배려는 지능의 영역이다”라는 말은
서로 반대 방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두 문장 모두 지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논쟁의 범위를 좁힌다.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만든다.
그리고 여기서 전혀 다른 맥락의 밈 하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럼 죽어.”
논쟁에서 지루하고 현학적인 설명 대신 짧고 강렬한 '그럼 죽어' 한 마디로 빠르게 논쟁을 종결시킨다는 내용의 인터넷 만화이다.
이 말은 논리적인 문장도 아니고,
어떤 깊은 통찰이 담긴 말도 아니다.
그런데 기능만 놓고 보면, 이 말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상대의 말을 반박하지 않는다.
맥락을 따질 필요도 없다.
그냥 대화를 즉시 종료시킨다.
논쟁에서 가장 강력한 말은
논리를 잘 쌓은 말이 아니라,
논쟁을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만드는 말인지도 모른다.
요즘 유행하는 말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정말 더 똑똑해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해하지 않고 끝내는 방법만 더 잘 배우고 있는 걸까.
맥락을 읽는 능력이 지능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언제나 지능 하나로만 설명될 수 있는 문제인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상황의 여유,
감정의 상태,
그리고 이 대화를 계속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맥락 대신 단어에 반응하기도 한다.
분명한 건,
요즘 유행하는 말들 중 상당수는
맥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쓰이기보다는,
맥락을 닫기 위해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능숙해진 기술은
서로를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서로를 빠르게 정리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