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큰 게 이기는 세상

배달 취소를 못한 날에 든 생각

by 잡생각 수집가

목소리 큰 게 이기는 세상이라는 말을,

나는 배달 앱 앞에서 처음 실감했다.


배달을 취소하지 못한 적이 있다.


전날 장모님 댁에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려고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늘 하던 대로 앱을 켜고, 메뉴를 고르고, 주문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주문을 누르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소였다.

배송지가 우리 집이 아니라,

전날 머물렀던 장모님 댁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주소를 바꾸지 않은 채로 주문을 해버린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정말 1초도 안 된 것 같은데,

이미 주문은 ‘수락 완료’ 상태로 바뀌어 있었다.

자동 수락이었을 것이다.

너무 빨랐다.


당황해서 바로 배달 앱에 연락했고,

곧이어 가게에도 연락했다.

돌아온 답은 같았다.

이미 조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취소는 불가능하다는 말.


30초도 안 됐는데?

아직 불도 안 올렸을 것 같은데?

이게 정말 조리 시작인가?


억울했다.

꽤 억울했다.


하지만 안 된다고 한다.

안 된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럼 어쩌겠나.

내가 버튼을 누른 건 사실이고,

시스템상 그렇게 되어 있다는데.


결국 장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죄송하지만 혹시 드셔주실 수 있겠냐고.

돈가스였다.

장모님은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짬처리는 아닌데,

짬처리 같은 상황이었다.


순간 기분이 상했다.

뭐라도 따져볼까,

조금 더 강하게 말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곧 이런 생각이 따라왔다.

그래도 이건 내 실수 아닌가.

주문 버튼을 누른 건 나고,

취소 타이밍을 놓친 것도 나다.


그렇게 그냥 수긍해버렸다.





그런데 이후에 뉴스를 보다 보면,

배달 취소 관련 기사가 종종 보인다.

배달이 시작된 후에도 취소를 했다느니,

라이더가 오고 있는데도 취소를 했다느니.


이상했다.

내가 겪은 취소는 그렇게 어려웠는데,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떻게 취소를 하는 걸까.


혹시 방법이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몰랐던 규칙이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은 의외로 단순한 쪽에 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


배달 앱에서, 고객센터에서,

그리고 가게와의 통화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진다는 이야기.

강하게 항의하고,

억울하다고 소리치고,

문제 삼겠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취소가 되고, 환불이 되고, 예외가 적용된다는 이야기.


반대로

“아, 그럼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제가 실수한 것 같네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규칙을 그대로 적용받는다.


그게 공정한 걸까.


나는 그날,

진상을 부릴 수 있었다.

더 강하게 말할 수도 있었고,

문제 삼을 수도 있었고,

아마 몇 번 더 통화했다면

취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고,

그게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이 사회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조용히 수긍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이득을 보는 구조.

진상이 전략이 되는 구조.

규칙보다 태도가 결과를 바꾸는 구조.


그럼 나도 진상이 되어야 하는 걸까.

다음번엔 일부러 화를 내야 하는 걸까.

“왜 안 되냐”고 따지고,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소리쳐야 하는 걸까.





사실 이건 배달 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회사에서도,

관공서에서도,

심지어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차분하게 말하는 사람보다

흥분해서 말하는 사람이 먼저 처리되고,

이해하려는 사람보다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더 많은 자원을 가져간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다들 조금씩 배운다.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부터가 진상인지.


그리고 그 선은,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나는 아직 화가 나고있는지 모르겠다.

목소리 큰 진상들을 받아주는 사회가 맞는지,

아니면

아예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맞는지.


다만 확실한 건 하나다.


지금의 구조는,

사람들에게 묻고 있다.


너는

조용히 이해하는 쪽이 될 건지,

아니면

조금 불편한 사람이 될 건지.


그리고 그 질문은,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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