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세대라는 말에 대하여

그럼에도 나는 이 세대를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by 잡생각 수집가

요즘 80년대생과 90년대 초반생을 두고

‘저주받은 세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는 제대로 부양받지 못할 첫 세대.

위로는 책임이 있고,

아래로는 기대할 것이 없는 세대.


이 표현이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각자의 기억 속에 비슷한 장면들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초중고 시절,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당연하던 교실.

지금이었다면 뉴스가 되었을 일들이

그땐 훈육이라는 말로 정리되던 시대.


대학 입시를 떠올리면

수능 응시자 수가 80만 명, 90만 명을 넘기던 시절이다.

재수, 삼수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경쟁에서 밀려난다는 감각은

열아홉 살에 이미 몸으로 배웠다.


아르바이트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최저임금은 있어도 지켜지지 않았고,

주휴수당이나 야간수당은

아는 사람만 받는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열정페이라는 말이 비판 없이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군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월급은 한 달에 10만 원이 채 되지 않았고,

구타와 욕설은 개인의 불운 정도로 취급됐다.

전역할 즈음이 되어서야

‘선진병영’이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등장했다.


취업을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기업 문은 좁았고,

중소기업이라는 말 뒤에는

열악함과 불안정이 기본값처럼 붙어 있었다.

관리자가 되지 못하면

40대 이후의 삶은 개인의 책임이 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공무원 시험이 마지막 탈출구처럼 여겨졌다.

임용 티오는 손에 꼽혔고,

몇 년을 준비하다가

조용히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았다.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한 뒤,

이제 막 결혼과 출산을 고민해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

사람들은 이 세대에게 묻는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출산율 0.7이라는 숫자 앞에서

이 세대는 또 하나의 비난을 감당해야 한다.


여기까지 보면,

‘저주받은 세대’라는 말이

그리 틀린 표현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이 세대를 축복받은 세대라고 생각한다.




이 세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몸으로 겪은 거의 마지막 세대다.


어릴 적에는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전화는 집 전화였고,

약속은 어김없이 어겼다.

기다림은 불편했지만,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동시에 우리는

PC방의 탄생을 지켜봤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처음 발을 들였다.

채팅창에서 타인을 만났고,

닉네임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배웠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기억하는 동시에,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꾸는 과정도 지켜본 세대다.

지도 없이 길을 찾던 기억과,

지도 앱 없이는 불안해지는 현재를 동시에 안다.


AI가 떠오르는 이 세대는,

그 변화를 관찰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학생처럼 실험만 하는 단계도 아니고,

은퇴를 앞두고 한 발 물러선 세대도 아니다.


업무에서 직접 쓰고,

효율을 요구받고,

성과와 책임을 함께 지는 상태로

AI를 다루는 세대다.

그래서 이 세대는

AI를 막연한 미래로만 보지 않는다.


당장 써보고, 부딪히고,

쓸모와 위험을 동시에 체감한다.


기술이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바꾸는지,

플랫폼이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속도의 변화가 사고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이 세대는 설명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함을 무조건 거부하지도 않고

편리함을 무조건 신뢰하지도 않는다.


아날로그의 비효율을 알기에 디지털을 쓸 줄 알고,

디지털의 부작용을 알기에

가끔은 의도적으로 느려질 줄 안다.


이건 생각보다 큰 자산이다.



image.png

이 세대가 힘든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전환기의 한가운데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규칙이 바뀌는 순간마다

항상 현역이었고,

기준이 바뀔 때마다

다시 적응해야 했다.


그래서 지쳤고,

그래서 냉소적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도,

책임을 회피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너무 잘 알아서일지도 모른다.


이 세대는 알고 있다.

이 사회가 개인에게 얼마나 쉽게 책임을 전가하는지,

그리고 그 책임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를.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이 세대는 저주받은 세대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축복받은 세대이기도 하다고.


모든 것을 겪어봤기에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세대.

양쪽 세대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세대.


아마 이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고통이 아니라,

판단력일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목소리 큰 게 이기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