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직에서 점점 무뎌지고 있는 걸까
어떤 영상을 하나 봤다.
영상은 꽤 의외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유튜브를 시작한 뒤,
이력서 합격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고백이었다.
처음엔 고개가 갸웃해졌다.
유튜브와 이력서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어서다.
보통은 반대 아닌가.
자기 생각을 말하고, 얼굴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쌓으면 오히려 플러스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영상 속 화자는 정반대의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칼 이야기였다.
아주 날카로운 칼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말.
애매하게 무딘 칼이 사고를 만든다는 설명.
잘 들지 않는 칼은 힘이 들어가고, 그래서 삑사리가 나고,
그래서 다친다는 이야기였다.
반대로, 정말 날카로운 칼을 쥘 때 사람은 달라진다.
장갑을 끼고, 자세를 바로 잡고,
손의 위치를 신경 쓰고,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사고가 줄어든다.
그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건 칼 얘기가 아니라, 결국 조직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상은 조직도 똑같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무딘 칼만 옆에 두려 한다.
사장도, 중간관리자도,
자기보다 잘 드는 사람은 불안하다.
그래서 자기보다 조금 덜 날카로운 사람을 뽑고,
그 사람도 또 자기보다 덜한 사람을 뽑는다.
그렇게 조직은 점점 무뎌진다.
어쩌다 정말 잘 드는 칼이 들어오면,
정면으로 쓰이지 않는다.
정치로 무뎌지거나,
아예 쓰지 못하게 된다.
이야기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 장면들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겪어온 조직에도
항상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일을 정확히 보고,
문제를 빨리 짚고,
필요하면 불편한 말을 하는 사람.
겉으로는 유능하다고 평가받지만,
속으로는 늘 위험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사람.
언젠가 사고를 칠 것 같다는 이유로,
혹은 위를 곤란하게 만들 것 같다는 이유로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는 대상.
영상 속 화자는
그 장면을 꽤 노골적인 말로 설명한다.
“저 사람은 뽑지 않았다.
신고할 것 같아서.”
화자가 몸담았던 곳은 헬스업계였다.
근로계약이 흐릿하고,
노동시간이 애매하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법과 규칙이 자주 무시되던 공간.
말을 잘하고, 기록을 남기고,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은
유능하기 이전에
위험한 존재가 되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확한 사람이 아니라,
조용한 사람이 선택되는 과정을
여러 번 보았다고 했다.
더 씁쓸한 건 그 다음 이야기였다.
정작 그렇게 말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일이 터지자
신고 방법을 묻고 있었다는 고백.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조금 불안해졌다.
나는 보안 업계에 있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유난히 날카로운 사람들이 많다.
이건 이렇게 해야 사고가 안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건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건 한 번 열어주면 반드시 터진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 말들이 맞다는 걸 나는 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조직에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보안은 한 번 문제가 생기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사람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말을 덧붙이게 된다.
오지랖이 발동되는 순간이다.
보안은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서가 아니라는 점.
그래서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점.
현실적으로는 정면 돌파보다
둥글게 해결해야 할 때도 있다는 점.
지금은 일단 지나가게 만들고,
기록으로 남기고,
사후에 다시 검토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나는 그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방식이 더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
묘한 생각이 든다.
그게 정말 도움이었을까.
아니면 나도, 그리고 내가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서로에게 무뎌짐을 가르친 건 아닐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내 조언이 조직에는 해였을지 몰라도,
그 개인에게는 분명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게 옳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의 나는
조직보다 사람을 먼저 떠올렸던 것 같다.
영상은 중간관리자를 이야기한다.
말을 전달하고,
회의를 늘리고,
결정을 미루고,
책임을 분산시키는 존재.
그게 악의라기보다는
생존 본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사람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싶고,
불확실한 변화를 두려워하니까.
이 대목에서 더 이상
영상을 비판하기가 어려워졌다.
왜냐하면
이건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 무난한 사람을 ,
불편한 사람보다 조용한 사람이,
문제를 드러내는 사람보다
문제를 덮고 넘어가는 사람이
현실적이라고 느끼기 시작했을지도 모르니까.
그게 성숙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을지 모른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돌아간다고,
너무 각 잡고 살면 네가 다친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날카로운 칼이 있을 때,
사람은 더 조심해진다.
자세를 잡고,
집중하고,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
조직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정확한 사람이 있을 때,
보고는 조심스러워지고,
말은 기록으로 남고,
대충 넘어가던 일은 다시 확인된다.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안전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상을 보고 난 뒤,
나는 조직보다 먼저
나 자신을 떠올리게 됐다.
나는 지금
조직을 위해 무뎌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편해지기 위해
날을 접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는
아직 답이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영상이 불편했던 이유는
누군가를 공격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어떤 가능성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칼은 결국 손이 쥐고,
조직은 결국 사람이 움직이니까.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날카로워지고 있는가.
아니면
조용히 무뎌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