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과 도전 사이의 묘한 거리
아버지가 담배를 끊은 건 20년도 더 된 일이다. 특별한 약도 없었고, 병원도 안 갔다.
다만 아버지가 택한 방법은 하나였다.
‘모든 사람에게 선언하기.’
“나 이제 담배 끊었어.”
가족은 물론, 직장 동료, 친구들, 동네 사람들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말하고 다녔다.
그렇게까지 선언한 뒤엔 다시 피우는 게 곧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되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게 싫었던 것 같다. 나는 그걸 단순한 자존심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스스로 만든 이미지에 나를 맞춰가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믿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스스로를 만들어가며’ 변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항상 통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시선이 부담이 되어, 도전 자체를 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몇 해 전, 회사에서 한창 보안 자격증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ISMS-P 심사원 자격증이었다. 나름 경력직이 도전하는 급의 자격증인데, 당시 팀원 몇 명이 같이 준비하고 있었고, 보안 쪽 임원(CISO)도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OO님도 한번 도전하시죠?”
내가 농담처럼 던지자, 그분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 했다가 떨어지면 쪽팔려서 어쩌려고.”
분명 농담섞인 답이었지만, 나는 순간 웃긴 동시에 약간 씁쓸했다.
능력 없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 이미지가 무너질까 봐 아예 시도하지 않는 선택. ‘높은 자존감이 오히려 도전을 막는 벽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 정확히는, ‘못한다고 믿고 있었고’, 그래서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영어는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고, 기술로 번역이 다 되니까 괜찮다고 자기 위안을 해왔다.
회사의 별명은 ‘흥선대원군’. 영어와 거리 두기 선포자.
(IT보안팀에 있으면서도, 모든 문서를 굳이 번역해서 보는 사람이 나였다.)
그런데 이번에 이직하며 글로벌 회사로 가게 되었다. 영어를 피할 수 없는 환경. 결국은 부딪쳐야 했다.
그러자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만 더 일찍 시도해볼걸.”
나는 그동안 내 자존심이 아니라, 실은 두려움 섞인 자존감의 껍질에 숨어 있었던 것 같았다.
돌아보면, ‘자존감이 너무 높으면 실패가 용납되지 않아 시작을 못 하고’, ‘자존감이 너무 낮으면 애초에 시도조차 포기하게 된다.’
그 사이 어딘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자세’, 즉 ‘나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믿게 만드는 ‘약간의 허세’, 그게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런 허세를 가식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요즘 이렇게 생각한다.
“도전은 가끔, 내가 아닌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연기하면서 시작되는 거 아닐까?” 그리고 그 연기가 오래되면 진짜가 된다.
결국 나를 바꾸는 건, 나를 믿는 것도 아니고, 남이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되고 싶은 나를 향해 ‘선언’하는 용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