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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지 Oct 17. 2022

내가 나를 육아 중

나는 일 중독자, 워커홀릭이었다. (‘일 중독을 고치는 중이다.’가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회사 일을 열심히 하고, 퇴근을 하면 부업을 하면서 남은 체력을 갈았다. 부업이 없는 날에는 영어회화 공부를 하고, 주식 공부를 하면서 1분 1초를 촉박하게 보냈다. 그때는 체력 좋고, 열정적인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멋지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번아웃으로 두들겨 맞았다. (번아웃은 오는 게 아니라 두들겨 맞는 것이다.)


그 일 중독 시기에는 음식을 해먹은 적이 거의 없다. 가끔 라면을 끓여 먹거나, 남은 배달음식을 덥히는 것 말고는 모두 시켜 먹었다. 기름진 음식 위주로 섭취했는데 짜장면, 햄버거, 치킨, 돈까스 등이었다. 건강하다고 자부했고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일은 시간 낭비 같았다. 


결국 건강에 이상이 왔다. 간수치는 정상 범위를 훨씬 벗어났고, 혈당도 높았다. 체중은 말할 것도 없이 비만이었다. 건강검진 결과에서 수치가 높은 것은 많은 사람에게 해당하는 문제이지만 발과 다리가 붓고, 기력이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눕고 싶고, 눕고 있으면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일도, 생활도 지탱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일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고, 부업도 모두 멈췄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침대에 누워 배달 어플로 밥을 시키고, 유튜브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를 끌어올리려고 산책도 하고, 독서도 해봤지만 순간일 뿐 다시 침대에 널브러져 하루를 보냈다. 나는 어떻게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를 몰랐다.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침대에 널브러져 생각했다. 매일 학교에 가서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어떻게 했지? 주말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도서관을 어떻게 갔지? ‘집밥’이 있었구나. 엄마가 해주는 뜨신 밥을 먹고, 잘 다려진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던 일상들이 스쳐갔다. 엄마가 나를 육아(양육)했듯이 내가 나를 육아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번아웃이 온건 내가 나를 엄격하게 괴롭힌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에게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이유식을 주듯이 나도 나에게 신선한 재료로 만든 식사를 먹여야 했다.


그래서 배달음식을 끊었다. 배달 어플을 지우는 일은 간단했지만 밥을 차리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직접 고른 재료들로 음식을 했다. 재료 손질부터 설거지까지 하면 족히 2~3시간은 잡아먹었다. 2~3시간이면 부업도 하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스스로 밥을 짓는 일을 중요한 요리 경연대회라고 생각했다. 번아웃이 사라질 때까지는 나라는 심사위원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것에만 집중했다. 좋아하는 나물을 무치고, 찌개를 끓였다. 어느 날은 반찬이 짜고, 어느 날은 밥이 질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먹였다.


가끔 짜장면이 먹고 싶으면 배달시키지 않고 식당을 갔다. 최소 주문금액 때문에 불필요하게 시키던 탕수육, 군만두를 시키지 않고 온전히 짜장면 한그릇만 먹고 집에 왔다. 유쾌한 경험이었다. 중국 음식을 먹고 속이 더부룩하지 않을 수 있구나. 생각해보면 짜장면, 햄버거, 치킨, 돈까스가 잘 못한 건 없고, 미련하게 먹은 내 죄가 제일 크다. 역시 떡볶이는 살이 안 찌지, 살은 매일 시켜 먹는 내가 찌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양질의 식사였다. 내 눈과 손으로 고르는 식재료. 건강을 위해 소금 간을 줄이는 것. 1회용 플라스틱 용기와 나무젓가락 사용을 줄이고 내가 좋아하는 그릇들로 음식을 채우는 것. 맵고 자극적인 음식 보다 단순하고 재료의 본연의 맛이 나는 음식을 즐기는 것. 과식하지 않는 것. 


포기하지 않고 밥을 잘 챙겨 먹으니 요령도 붙고 살림도 늘었다. 대파 한단을 사면 반은 망가져 버렸는데 이제는 모두 정리해서 냉동실에 넣는다. 냉장고가 꽉 차지 않도록 식재료를 조절해서 사고, 반찬을 한 번에 많이 하지 않는다. 2~3시간 걸리던 것들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니 1시간이면 설거지까지 마칠 때도 있다.


그렇게 회복하는 것이다. 갓 지은 밥이 입을 가득 채우고 배를 부르게 하니 기력이 생긴다. 기력이 생기니 침대에서 머무는 시간 보다 일을 하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면 무너졌던 일상을 지탱할 힘이 생긴다. 영혼을 갈아 일하지 않고,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시간만 공부한다. 나라는 어른이가 아직은 미숙하여 가끔은 과하게 배달음식을 시킬 때도 있고, 코피를 쏟으면서 에너지를 쏟는 날도 아직 있다. 그래도 내가 나를 육아한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오늘은 무엇을 먹고 싶니? 물어보며 끼니를 챙겨준다. 그러면 촉박하던 하루에도 숨통 트일 시간이 있으니 번아웃에 두들겨 맞을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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