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해부>
재판 과정에 대한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긴밀한 서사를 보여주는 영화 <살인의 해부>. 오토 플레민저 감독의 1959년에 개봉한 미국의 법률 드라마 영화로, 로버트 트레버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하였다. 미국 영화 협회에서 선정한 미국 법정 영화 TOP 10에 이름을 올렸다. 2024년 1월 31일에 개봉한 영화 <추락의 해부>가 이 작품을 모티브로 하 감상하게 되었다. 왜 최고의 미국 법정 영화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고전 명작이다. 제32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색상, 촬영상을 휩쓴 작품이다.
폴 비글러. 그는 10년 간의 지방 검사직에서 물러나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다. 오래간만에 사건 의뢰가 걸려와 마을 내의 1급 살인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의뢰인은 육군 중위인 프레드릭 매니언의 와이프 로라 매니언. 사건의 본질은 다음과 같았다. 와이프인 로라를 성폭행한 여관주인 바니퀄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것은 명백하나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이다. 변호를 본격적으로 맡게 되면서 양측의 의견이 명백하게 대립되는 법정 공방 또한 치열해진다. 정신 착란으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피고인 측과는 다르게 검찰 측의 주장에 의하면 로라가 바텐더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를 질투한 벤이 바텐더를 살해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DNA 검사에 의하면 강간으로 유추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 정황과 증거에 의거하면 상황은 절대적으로 벤에게 불리한 상황! 과연, 폴 비글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전반적으로 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상황을 위해서는 '무죄'를 입증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판례를 살펴보던 중, 이 사건과 유사한 사건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불가항력적 충동'이라는 단어였다. 억제할 수 없는 충동으로 인해 저지른 범죄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현재 의뢰인을 변호하기 딱 좋은 판례였다. 그래서 인정은 하되 사실에 대한 정확한 논거가 뒷받침될 논리와 근거를 완성한다. 불가항력적 충동으로 인한 범죄지만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야기를 덧붙이고 화려한 말솜씨로 논점을 흐린다. 그리고 기록지에는 쓰이지 않지만 배심원들에게 충분히 영향이 갈만한 단어를 사용하여 법정의 분위기를 바꾼다. 모호한 용어 사용과 농간으로 검사 측에서 집중하는 '살인'에 대한 논거를 부수고 '강간'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것이다. 그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것 가운데, 프레드릭의 와이프인 로라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그때 당시의 사회에서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는 자유 분방한 그녀를 적어도 법정에서는 조신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영화는 사건의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의심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부분으로 이목이 쏠린다. 이 재판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와이프 로라와 매리 필란트일 것이다. 남편의 무죄, 그리고 다시 자유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재판이 끝나고 나면 과연, 프레드릭이 그녀를 가만히 놔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떠난 것처럼, 또다시 그 논거를 꺼낸 것처럼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그녀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그때 시대상이라면 가능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은 매리 필란트. 여관을 뒤이을 사람이라는 것과 진술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을 만큼 그녀는 이 재판을 뒤집을 유일한 증인이라는 점이 의심스럽다.
<살인의 해부>는 다소 평면적 전개 방식이긴 하나 재판 자체에 중점을 둔 법정 드라마이다. 16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몰입감을 주는 전체적인 구성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영화는 피고인, 변호사, 검사, 그리고 증인들의 관점을 통해 사건을 다각적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한다. 법정 공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전개인만큼 영화는 '변호인'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 사실이 드러나 있는 상태이고 이 상황을 무죄로 이끌기 위한 변호사의 전략이 중점이 된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배심원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면 <살인의 해부>는 변호사와 검사 간의 법정 공방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살인의 해부>에서도 배심원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만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만 판단을 맡긴다는 점과 다소 주관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는 배심원들의 역할과 의사 결정 과정에 중점을 둔다. 배심원 제도의 특성을 자세히 탐구하면서 법정 내부의 인간적인 면모와 윤리적 고민을 다루고 있다.
살인이라는 명백한 사실과는 다르게 정황과 증거가 존재하지만 영화에서는 밝혀내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영화 속의 판결은 정말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변호사의 진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판사와 배심원의 판단을 보았을 때, 적절한 법정 공방인지 의심스러웠다. 영화는 그 지점을 정확하게 비추고 있으며 그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재판 과정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구현해 내어 사법 제도를 해부하듯 날카롭게 분석하여 사법제도의 문제와 한계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사건의 직접적인 상황을 보여주지 않고도 재판과 관련된 상황을 통해 독자들이 직접 '판단'하게 한다. 물론 판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판단할 수 없는 일을 법률적으로 판단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행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객관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영향이 안 간다고 할 수 없겠지만 비전문가인 배심원들이 개인적 주관의 개입 없이 사건의 진실에 근거한 객관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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