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락의 해부> 리뷰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제76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024년 1월 31일 개봉한 영화이다. 법정 스릴러로서 큰 매력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냉철한 관찰과 섬세한 연출로 관객들을 숨 막히는 긴장감 속으로 몰아넣는다. 특히, 다큐멘터리와 같은 영화의 연출은 현실감을 선사하며, 객관적인 시각으로 진실을 추적하는 듯한 몰입감을 더한다. 영화에서 선사하는 반전과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메시지를 마주하면 더욱 강렬한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교수와 학생 간의 인터뷰가 시작되지만 산드라는 인터뷰보다는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 순간, 집안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산드라는 익숙한 듯 계속 대화를 이어간다. 하지만 점점 커지는 음악 소리에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되자 중단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피곤한 기색으로 산드라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그의 아들은 개와 산책을 하러 간 사이, 사뮈엘이 추락했고 아들이 돌아와 그 모습을 처음 발견한다. 추락의 이유는 타살인가. 사고사인가. 자살인가.
의학적 사인은 두부외상, 법의학적 사인은 사고 혹은 의도가 개입된 사망. 같은 시간 유일하게 산장에 있던 아내 산드라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사건은 본격적으로 법정으로 넘어가면서 가족의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되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직접 드러내기엔 좀 창피하기도 한 일들이 세상에 공개된다. 환상에 가려진 현실을 마주하게 만드는 과정인 걸까.
영화 <추락의 해부>는 사실 추락에 대한 해부가 아니라 가정에 대한 해부 과정을 다뤘다. 관계의 추락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곤두박질치는 추락을 보여준다. 열등감과 우월감의 부부관계, 죄책감과 연민의 부자관계 그 사이의 공백은 사람들의 만연한 추측에 의해 채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아들인 다니엘이 사뮈엘의 부주의로 인해 사고를 당했고 그로 인해 시각 장애를 얻었다. 작가로서 명성을 펼치는 산드라에 비해 어린 시절부터 꿈을 키워온 사무엘은 그에 못 미치는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아들의 사건 이후 부부 사이의 관계에도 갈등이 생겼고 그에 따른 불만 또한 터져 나온 것이다. 그 사실이 밝혀지며 산드라에게 불리한 상황이 이어지는데, 그녀에게 남은 건 아들인 다니엘의 증언뿐이었다.
이는 현대 사회를 투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타인의 이야기는 가십거리로 여겨지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흥미'로 치부되어 언론과 대중의 관심 대상이 된다. 무분별한 판단과 가짜뉴스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지만 사실을 바로잡는 노력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저 자극과 진실이 조금 들어있는 왜곡만이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정황과 증거에 따라 추측이 난무하며 일정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데, 따라서 진실을 선택하며 그 사실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게 한다.
부부 사이의 문제는 재판이 시작되면서 적나라하게 해부된다. 영화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의 영역을 한 장면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영화 속의 인물들이나 보는 관객이다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람은 한 장면을 보면서 저절로 '판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편인 사뮈엘은 가사와 집안일 도맡아 하며 아이를 양육해 왔고 와이프인 산드라는 작가로서 책을 출간해 왔다. 아이 양육에 적극적이지 않은 산드라의 모습은 사뮈엘에게 있어서 불만 사항이었지만 그녀는 이 문제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들을 홈스쿨링 하자고 제안한 것도, 여기로 오자고 한 것도, 책을 출간을 하지 못한 것도 모두 사뮈엘의 의견이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주 언쟁을 했고 그가 죽기 전 날까지도 싸운 흔적이 발견된다.
이는 부부 사이의 문제이지만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과거 정해진 성역할로 인해 여성은 여성답게 남성은 남성답게 라는 고정관념으로 저마다의 부담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시간이 변하면서 과거의 부조리함이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고정관념은 변하지 않고, 대상만 바뀌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강요한 일은 아니지만 부조리함이 자연스레 여겨지고 있다면 문제를 인지하고 변화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다니엘은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증인을 맡고 있다. 그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첫 번째 목격자이지만 목격자가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가족 사이에서 가장 진실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온갖 주장과 추측이 난무하던 재판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의 사실을 발견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을 나름 정의를 지어 증언해야 한다. 진실을 결정지을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닌 만큼 혼란스럽지만 그 사실 사이의 공백을 나름의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 어른들 사이에서 겪는 혼란과 알지 못했던 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 <추락의 해부>에서는 명쾌한 해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영화의 제목이 '추락의 해부'인 만큼 사건의 전말을 무사히 해부하여 밝혀지기길 바랐던 관객들은 결말이 다소 허무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법정추리극이지만 범인 추적에 맞춘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범인'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주변을 조금 더 잘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영화는 정답을 찾기보다 '정답'을 찾기 위해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끝에 가서 마주할 것들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 영화 속에서는 추락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나도 자살 혹은 사고사, 타살을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 그래서 의문사인 이 사건을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야 했던 사람들은 죽음과는 관련 없는 가정사를 해부하기 시작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진실은 그 가치를 잃어가며 추락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개연성 있는 결말은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이, 진실보다는 가십거리를 부여하며 한 가정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전시되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과거, 생활방식, 자유로운 사랑관처럼 진실보다는 가십과 편견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결국,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던 법정에서는 마지막 증언을 통해 판결했고 그들이 알고 있을지 모를 사건의 진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며 누구도 알 수 없게 끝나버렸다. 그저 해석의 여지를 남긴 채, 그의 표정과 사건 정황 그리고 추측에 의해 판단을 맡길 뿐이다. 비록 그녀가 제 자리를 찾아 편안한 공간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이미 해부된 자신의 가정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만약, 그녀가 정말 죄를 지었다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영화 <추락의 해부>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해부하여 화려한 외면 뒤에 숨겨진 어두운 비밀들을 드러낸다. 단순히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내면 심리 탐구에 깊이를 더한다.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의도가 서로 뒤섞이며, 진실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특히,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는 각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감독 쥐스틴 트리에는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연출과 섬세한 캐릭터 표현으로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몰입감을 더한다. 숨 막히는 긴장감을 보여주는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재판 장면은 예상치 못한 반전과 증언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어 더욱 인상 깊다.
비슷한 느낌의 영화로 오토 플레민저 감독의 <살인의 해부>, 빌리 와일더 감독의 <검찰 측 증인>,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결혼의 풍경>이 있다고 하니 해당 영화들을 모두 감상하면 좋다. 특히 <살인의 해부>에서 오마주를 했다고 하니 꼭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해당 영화 리뷰는 아래에 첨부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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