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레럴 마더스> 리뷰
어딘가에 묻혀있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만나게 된 아르투로. 책임지지 않는 가벼운 관계에서 시작된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으로 새로운 생명을 품게된다. 그렇게 홀로 아이 낳기를 기다리면서 같은 병실에서 어린 소녀인 아나를 만나게 되고 같은 날 출산을 하게 되면서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를 건넨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지만 출산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보편적인 모성애를 들이밀지 않는 점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준비되어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야니스와 아나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갑작스레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순간들이 쌓이고 모이면서 생겨난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 야니스는 어떤 모습이든, 편견과 선입견에 갇히지 않고 온몸으로 자신의 아이인 세실리아를 사랑으로 키운다. 그러던 어느 날, 세실리아가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누구보다 세실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야니스는 그 누구에게도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을 모두 차단해 버렸지만 역사가 시간이 지나면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야니스가 가진 비밀도 서서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야니스와 아나가 우연한 만남으로 재회하게 되는데, 아니를 집에 데려오면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순수한 사랑을 내뿜는 아나와 연민의 감정으로 꼭 끌어안는 야니스가 겹쳐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실리아와 아니타가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야니스의 불안한 마음은 더더욱 커지기 시작한다. 야니스는 그와 함께 지내면 지낼수록 진실이 이끌어오는 거짓말과 죄책감을 이길 수가 없어진다.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빠지게 되면서 결국 진실이라는 선택지를 꺼낸다. 진실을 거짓으로 덮은 결과는 배신이었고 사랑을 깨뜨리는 이별이 뒤따라오게 만들었으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끊임없이 사랑을 나누고 베풀었던 야니스의 모습이 재회의 형태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보편적인 가족은 늘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모두가 그 모습을 따르고 있지는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삶으로 다른 형태로 살아가기에 획일적인 존재로 남아있지 않는 엄마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보편적인 모성애라고 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둘레와 동질감에서 오는 사랑이 한 사람에게서만 오는 것은 아니니 끊임없이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인물들을 통해 순환되는 '가족애'를 발견하기도 하고 불안정한 '사랑'을 발견하기도 한다.
야니스의 진실과 역사의 진실이 동시에 풀리면서 왠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진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가지 이야기인 과거의 참혹한 역사와 여성의 연대를 같은 선에 놓고 메시지를 던진다. 선입견과 편견도 모두 뛰어넘고 속박되지 않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색채가 그대로 드러나 더 좋았다. 인물에 생각을 투영하지 않고 인물 자체로 드러내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침묵의 역사란 없다
그들이 아무리 태워버리고
아무리 부서뜨리고
아무리 거짓말해도
인류의 역사는 침묵하지 않는다."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