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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May 23. 2022

상실의 순간을 마주하는 순간.

영화 <데몰리션> 리뷰


인생에서 힘든 순간들은 정말 많겠지만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는 싱크홀 위에 서서 끊임없이 그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 빠져나갈 수 없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때를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나 자신으로 인해 자신을 암흑 같은 감옥에 가두는 순간을 경험한 나는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가만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곤 했던 그때는 시간이 쌓이는지 모르고 시간, 시간이 쌓아 하루, 하루를 한 달로 만들고 무기력으로 뒤덮인 몸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었던 내가 어떤 계시라도 받은 듯, 누군가의 추천을 받지 않고 ‘데몰리션’이라는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다. 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같은 무기력을 겪고 있는 주인공에게 나의 감정을 대입하며 영화에 빠져들었다.



다소 차갑고 주변에 무신경한 데이비스는 세상과 자신을 차단하는 헤드폰을 끼고 자신에 더욱 집중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와이프를 잃고 더더욱 무감각해지는 데이비스. 어떤 슬픔도 사라진 듯 데이비스는 그저 멍하게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며 아무리 짜내어 보아도 눈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모습에 냉혈한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판기가 되지 않은 사실을 자판기 업체에 항의를 가장한 속마음 편지를 보내게 된다. 그보다 주변이 더 슬퍼하는 모순이 돋보이는 회사생활을 이어가는 데이비스, 슬픔을 잊어버리다 못해 무기력한 데이비스는 주변의 반응으로 이상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실은 그 이상함은 공허함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순간이었음에도 그 슬픔으로 인해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마주한다. 여유는 솔직함을 불러오고 솔직함은 평소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만들어낸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야 해”



무난하고 평범하게 지나갔던 순간들이 소중한 순간들로 자리 잡으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그 순간을 붙잡으려고 소소한 것을 분해해 보아도 돌이킬 수 없음을 부정하듯이 그는 점점 더 큰 것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분해하고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끝끝내 알아낸 듯하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무표정 아래 눈물 어린 감정이 데이비스를 덮는다. 홀로 겪어 내야만 했던 그의 감정들은 고철 덩어리가 아닌 온전한 자신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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