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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내어줄 수 있지만 자식은 내어줄 수 없는 것.

영화 <내일을 위한 길> 리뷰

by 민드레


슬픈 영화가 아닌데도 울컥하는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레오 맥캐리 감독의 1937년 연출작 <내일을 위한 길>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세핀 로렌스의 1934년 소설 <세월은 너무 길다>와 헬렌 리어리, 놀란 리어리의 1935년 연극이 원작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이 절로 떠오를 만큼 부모와 자녀,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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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50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자녀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 후 들려오는 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정년퇴임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면서 집 대출을 갚지 못한 것이다. 그로 인해 살던 집을 압류당하여 6개월 안에 비워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 보려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고 집을 비워줘야 하는 날은 고작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녀들은 무조건 자신들이 부모를 모시겠다고 하지만 부모님 두 분을 모두 모실만한 여유가 되지 않았다. 현실적인 문제로 두 부부는 다른 자녀의 집에서 지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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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벽에 가로막히다.


자녀들 또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대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로에게 '부담'이었고 '불편'한 동거였던 것이다. 루시가 도우려는 노력은 '방해'로 여겨지고 그녀의 존재나 습관은 성가셨다. 그런 모습에 루시는 서운했지만 티 낼 수 없었기에 애써 담담하게 대처한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집에서 내보낼 방법을 은근하고도 노골적으로 모색하며 더 온화한 기후의 지역 혹은 요양원을 고려하게 된다. 한편, 바크는 어떻게든 다시 같이 살기 위해 취직을 하려 했지만 고령의 나이였기에 쉽지 않았다.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가 어려웠기에 더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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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부모는 자식이라는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내어주어야 하는 과거일 뿐인 걸까? 부모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과 부양 부담에 놓이며 부모의 문제를 외면하게 된다. 그 굴레는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처럼 부모와 자식의 문제는 한 가지 요소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다. "가끔 생각하는데, 평생 자식들이 크지 않고 꼬마로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대사는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낸다. 속절없이 지나간 시간과 헌신을 다해 키운 자식에 대한 서운함, 그럼에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은 때론, 일방적인 짝사랑일 수밖에 없어 닿기 힘든 사이가 부모의 자식의 관계가 아닐까.


후반부에는 그토록 서로를 만나고 싶어 했던 두 부부, 바크와 루시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며 분위기가 반전된다. 자녀들과의 작별 만찬을 마다하고 뉴욕에서 마지막 오후를 함께 보내기로 한 것이다. 자녀들과의 불편했던 일상과 냉대했던 대우와는 다르게 낯선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형식적인 작별이 아닌 소중한 순간을 선택하고 즐기는 모습이 뭉클하고 웃음이 났다. "책은 가져갔지만 시는 가져가지 못했어요"라는 말을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잃어도 진정한 사랑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부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 사랑을 통해 인간의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양의 행복을 받는 것 같아요. 인생 초반에 받거나 인생 중반에 받거나 인생 끝에 받거나 아니면 평생 동안 조금씩 계속 행복하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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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도시.


영화는 노인의 역할 자체가 축소된 현실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부모의 마음과 자녀들의 현실적인 고뇌 모두에 공감하게 만들지만 특히 자식의 입장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한다. 각자의 삶이 버거워 부모를 '부담'으로 여기고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자녀들의 모습은 "세월이 지나 오늘을 뒤돌아보면 나 자신이 정말 추잡할 거야"라는 대사처럼 깊은 후회를 남길지도 모른다는 씁쓸함을 안긴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의 경제적 자립이 힘들게 만드는 노인 빈곤이라는 사회 문제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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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내일을 위한> 우 <길 동경 이야기>


레오 맥캐리 감독의 <내일을 위한 길>을 감상할 때,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가 생각났다. 실제 <동경 이야기>가 영감을 받았고 플롯 또한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자식이 제대로 돌보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차이점도 명확하다. (우선, 집의 유무) <내일을 위한 길>에서는 낯선 사람들에게 친절과 배려를 받고, <동경이야기>에서는 며느리 노리코가 유일하게 시부모를 정성껏 돌본다. 뉴욕과 도쿄, 사람이 이 붐비는 곳에서 삭막한 도시의 풍경이 뭉클함을 더한다는 것 또한 공통점이다. 공통적으로 사랑의 가치이라는 가치가 등한시되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한 돈이 우선시 되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만들어주는 두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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