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8년 후> 리뷰
대니 보일 감독과 알렉스 갈랜드 각본가가 다시 뭉쳐 28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간다. 오랜 기다림 끝에 『28년 후』는 2025년 6월 19일 개봉했다. 새로운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28 시리즈'의 팬들의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영화는 과연 전작의 명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전염병이 퍼진 지 어느덧, 28년이 흘렀다. 유럽은 바이러스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고 영국 본토를 격리했다. 홀리 아일랜드에서 나고 자란 소년 스파이크는 12살을 맞아 성인식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 제이미와 함께 본토 첫 출정을 떠난다.
생존자들은 홀리 아일랜드에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이 고립된 환경은 기묘한 전통이 생겨나는 계기가 된다. 이 공동체는 성인이 되면 본토에서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을 사냥해야 한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고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중요한 의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문명은 쇠퇴하며 삶의 방식은 원시적으로 변화한다. 첨단무기인 총 대신 활을 사용하고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다시 구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전통과 규율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 되지만 외부의 시점에서는 기괴함과 미지의 분위기를 풍긴다. 생존이 목표인 인간 사회의 극단적인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이에 대해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들의 배타적인 태도와 기이한 전통이 이질감을 일으키는 부분에 대해 주목한다. 생존을 위한 규율이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한 공동체에서 자란 스파이크는 본토로 떠나는 선택을 한다. 부정을 저지른 아버지를 떠나고,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한 선택이지만 공동체가 부여한 역할과 영웅의 운명을 벗어나기 위한 저항의 의지로 보인다.
메멘토 모리는 그대는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해라 라는 뜻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며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하지만 28년 후, 영국이 분리되며 그 죽음은 너무나 흔해졌고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형태의 무언가가 되었다. 도덕이나 윤리, 규율이 자리 잡기 이전의 시대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영국 봉쇄는 근본적인 해결대책은 아닌 것이다.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은 채, 또 다른 존재의 탄생을 알린다.
28년이라는 세월 동안, 분노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여 변종 혹은 진화된 형태의 '알파'를 만들어내었다. 그들은 기존의 감염자처럼 쉽게 죽지 않으며 나름의 질서와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간다. 리더로 보이는 알파는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며 생각을 통한 판단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인간을 공격하는 존재지만 마땅히 죽어야 할 존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더군다나 알파에서 태어난 새로운 생명이 감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이 경계를 더욱 불분명하게 만든다. 감염자와 비감염자의 경계, 인간과 괴물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위협을 받기 전에 없애버리는 무감각하고 상실된 인간성을 보여준다. 좀비는 무조건 죽여야 한다 라는 통념을 깨뜨리는 것에서 다시 시작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여정을 기점으로 스파이크의 생각은 확고히 달라진다. 이제 본토는 그에게 더 이상 호기심이나 탐험의 공간이 아니다. 생과 사를 결정짓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과장된 영웅담에 거리감을 느끼고 어머니를 왜 치유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그 후, 아버지의 부정을 마주한 후 함께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스파이크는 공동체에서 금기시되는 존재인 의사 칼슨에게 어머니의 치료를 부탁하기 위해 무모한 여정을 다시 떠난다.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서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에도 이전의 공동체로 돌아가지 않는다. 가족주의에 가까운 이전의 공동체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정확히 어떤 집단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당히 극단적이고 알파를 처치하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광기가 보이는 사람들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영화 초반부 이 섬마을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이 나온다. 하지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암묵적인 규칙 아래에 개인 영역을 유지하는 것으로 밝혀진다. 인간에게도 해를 가할 수 있는 잔혹한 면모가 보이는 만큼 이들과 함께할 스파이크의 향후가 더욱 궁금해지는 탓이다.
폐허가 된 도시가 아닌 풀이 무성한 자연의 풍경이 펼쳐진다. 인간이 사라진 뒤 자연이 회복된 모습은 평온하지는 않지만 원래의 질서를 찾아가고 있다. 이 지점에서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명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전염병과 전쟁이라는 재난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오늘의 현실과 묘하게 겹친다. 생명을 경시하고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이 시대에 한 집단과 이념만으로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할 뿐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끝없는 파괴를 낳을 뿐이다. 진짜 위협은 둔감해지는 윤리의식과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우리'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여주고 싶었던 게 너무 많았던 걸까. 영화는 장르적 재미보다는 성장과 주제 그리고 메시지에 집중한 탓에 다소 과하고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지나치게 넓어진 세계관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보일 감독은 28일의 주인공인 짐이 새로운 3부작의 세 번째 영화에서 "더 큰 구원의 이야기"와 함께 돌아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물론 죽음에 대한 영화의 메시지는 흥미로웠지만 새로운 집단의 탄생이 다소 이야기를 난해하게 만들었다. 설정의 개연성이 떨어져 다소 혼란을 유발한다. 철학은 담았지만 재미는 놓친 것 같아 매우 아쉽다. 감염자들을 공격하고 폭발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연출은 게임 화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작위적이라 몰입을 방해한다. 감염자들의 죽음을 밈으로 소비하는 것을 비판하는 대목일지도 모른다. 특히 어머니의 능력이 발휘되는 부분에서 반전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없어서 좀 허무했다. 또한, 죽음을 표시하는 부분이 얼마든지 죽음이 나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지만 심오한 의미에 비해 난해하다. 켄 로치의 1969년 영화 <케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된다. 두 인물 모두 어린 나이에 잔혹한 세상에 놓인다는 점과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점이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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