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괴물

시와 동화 (계간) : 봄호 [2025] 111호 수록-동화시

by 포공영

그림자 괴물




콱, 죽어 버려!


아이는 돌 틈에 핀 민들레를 발로 마구 짓뭉갰습니다. 담벼락에 드리운 아이의 그림자가 배고픈 늑대처럼 뾰족뾰족, 뾰족뾰족해집니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날 때도, 술 취한 아빠가 주정을 부릴 때도, 철없는 아이들이 거지라고 놀릴 때도, 보신탕 집 할망구가 어미 없는 자식이라고 흉을 볼 때도, 추운 겨울 선생님의 손바닥이 뺨을 후려치던 날에도 아이는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는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멋진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멋진 시인의 곁에는 언제나 따스한 햇살과 향기로운 꽃들과 아름다운 산새들이 함께 했습니다. 아이의 이름이 ‘민들레’인 까닭입니다.


얼마 전 아이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그림자 괴물을 만났습니다. 뾰족뾰족한 이빨과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그림자 괴물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꿈을 한입에 꿀꺽 삼켰습니다.


따스한 햇살은 구름 속에 갇히고 향기로운 꽃들은 이내 시들고 말았습니다. 산새들의 울음이 허공을 날카롭게 찢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불빛으로 휘황찬란했지만 물속에 잠긴 것처럼 고요했습니다.


꿈을 먹어치운 그림자 괴물은 아이를 길바닥에 내팽개친 후 사람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똑같은 길을 걷고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집에 살며 똑같은 표정을 짓고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무도 그가 아이의 꿈을 잡아먹는 그림자 괴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림자 괴물이다! 다들 조심하세요!


아이는 그림자 괴물을 마주칠 때마다 소리쳤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그림자 괴물을 혼내주세요.


매일 밤 아이는 잠들기 전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조차 아이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이는 발밑에 짓뭉개진 민들레꽃을 보며 하염없이 중얼거렸습니다. 민들레꽃은 내년 봄에 다시 필 것이지만 꿈을 잃은 아이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꽃이 피지 않을 것입니다. 엄마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말이지요.



<시와 동화111, 2025 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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