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 Mirror Oct 14. 2021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내가 아닌 남에게 초점을 맞추어 살아왔다. 어릴 때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며 살았다. 늘 '나'보다는 '남에게 착하게 보여야 해, 착한 평가를 받아야 해'하는 마음이 강박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면서도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늘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엄마가 바라는 것을 되도록이면 들어주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엄마가 내게 '우리 착한 큰 딸'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깨뜨린 계기가 바로 엄마 아빠가 싸울 때 칼로 아빠를 죽이겠다고 했던 그 순간이었다. 그 순간 아빠를 죽이지는 못했으나, 그때까지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던 착해빠진 나를 죽였다.


그래서 늘 내성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초등학생 때와는 달리 중학생이 되어서는 눈에 띄는 아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두루 친하게 지냈고, 친구들이 좋아해 주던 아이였다. 반장, 부반장, 학생회장 선거위원회 등 다양한 활동을 두루 섭렵했다.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뭐든지 일단 실행하고 보는 스타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실행력은 고등학생, 대학생, 사회생활까지 계속 이어졌다.



수능 시험을 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은색 머리카락을 갖는 것이었다. 엄마를 졸라 동네 미용실에 가서 따가운 여러 번의 탈색을 견디고 드디어 은색 머리카락을 갖게 되었다.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 졸업식 때 초록빛과 노란색이 같이 감도는 머리색을 하고 까만 정장에 빨간색 구두를 신고 갔다.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대학 입학 전 새내기들이 모이는 모임에서도 노란색 머리는 단연 눈에 띄었다. 선배들도 이름은 기억 못 했지만 '노랑머리 신입생'으로 나를 기억했다.




내 가슴은 참으로 작은 편이다. 가슴 몽우리가 나오면서 남들처럼 브래지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어릴 때는 작은 가슴을 누군가 계속 쳐다보며 '쟤 가슴 봐, 엄청 작아'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서 어깨를 늘 움츠리고 다녔다. 


그런데 브래지어를 하면서도 늘 나는 '이걸 꼭 해야 하나? 모름지기 브래지어란 가슴이 좀 덜렁덜렁거려서 불편하기 때문에 그걸 꽉 잡아주어 일상에서 불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착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가슴이 워낙 없어 덜렁거릴 일도 없기 때문에 브래지어로 가슴을 꽉 잡아 고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포츠 브라 같은 걸 즐겨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환승하는 곳에 있는 상점에서 러닝셔츠 가슴에 가슴 뽕을 넣었다 뺐다할 수 있는 제품을 발견하게 되었다. '유레카' 당장 여러 개를 구매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헐렁한 러닝셔츠에 가슴 뽕을 넣어 브래지어를 대신하게 되었다.


가슴을 전혀 압박하거나 조이지 않아서 무척 편안하다. 브래지어를 안 한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주변의 시선을 인식하지 않고 산지 꽤 오래되었다. 시선을 완벽하게 무시하며 지내던 시절에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청바지에 조리를 신고 갔고, 친구 아이의 돌잔치에 마치 무전여행 중인 사람 같은 복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했다. 


오히려 요즘은 누군가와 연관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상대방을 조금 배려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 맞는 의복과 외관 정도는 갖추고 가는 편이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지만, 너무 이기적이지는 않게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사람들을 위해 어느 정도는 배려할 줄도 아는 유연함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