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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Jan 09. 2023

미련 내려놓기

ㅡ명상인류로 점핑하기


학위를 마치는 대로 거실에 있는 책을 정리하겠노라 큰소리를 뻥뻥 쳤습니다. 하지만 싱거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요. 정리할 책의 양이 어마어마하기도 했고, 딱히 무얼 버리고 남기고를 정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정작 버리려고 하니 모든 책이 필요하고 중요하게 보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지요. 뭐든 잘 버리지 못하는 제 성격도 한몫했습니다.


그렇게 책 정리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어느새 머릿속에서 지워졌습니다. 집에서도 포기했는지 더 이상 말이 없었지요. 그러나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는 부채감마저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주와 이번 주에 걸쳐 전격적으로 책 정리를 단행했습니다. 2년 만입니다. 문득,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집에서 거실을 넓게 썼으면 하고 바란다는 걸 안 것도 결행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봐도 넘쳐나는 책들로 거실이 답답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속전속결 망설임 없이 정리에 착수했지요.


우선 거실에 있는 책 중에서 출판 연도가 오래되었거나 누렇게 변색된 책을 일차 처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중고서점에 갈 책과 폐기처분할 책을 구분했습니다. 다시 보지 않을 책과 그럴 가능성이 낮은 책을 두 번째 대상으로 정했지요. 폐기할 책은 바로 현관 앞에 내다 놓았습니다.


이어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에서 처분할 책을 골라냈습니다. 주로 동화책과 소설책이 다수였지요. 나중에 다시 보겠다고 꽂아놓았던 책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보기는커녕 먼지만 쌓이도록 방치해온 책들이었죠. 차마 버리기 아까웠지만 과감하게 끌어냈습니다.


그다음에는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읽었던 책과 유인물, 노트에 손을 댔습니다. 하나같이 손때가 묻은 것들이었지요. 언젠가 필요하리라 여겨 고이 모셔두었던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럴 일은 없을 듯 보였습니다. 이번에도 미련이 남았지만 폐기하기로 결정했지요.


이렇게 순서대로 하나씩 정리하고 보니 버릴 책이 책장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았습니다. 제가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었다는 걸 새삼 알았습니다. 집에서는 제 결정에 저만큼이나 놀라워하면서도 반가워했지요.


중고서점에 갈 책들을 가방에 넣어 차에 실었습니다. 직원이 코드를 찍으며 살 책과 그렇지 않을 책을 분류하고, 살 책 중에서도 서점에 없는 책을 고르다 보니 판 책은 몇 권 되지 않았습니다. 주로 초과입고가 뜨는 바람에 가져간 책을 다시 가져와야 했지요. 결국 팔지 못한 책은 서점 지하 1층에 있는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그 뒤로 한차례 더 책을 솎아냈습니다. 이번에는 리더십과 관련된 책입니다. 몇 년 전에 리더십 전문 작은 도서관을 염두에 두고 정년퇴직한 지도교수님의 책장에서 가져온 책들입니다. 그런데 그 계획을 접으면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책입니다. 오래되기도 했고, 이름까지 써 있어 팔 수 조차 없었지요. 몇 권을 제외하고는 현관으로 직행했습니다.


이렇게 어렵사리 책 정리가 끝이 났습니다. 안방과 할머니 방에도 정리할 책이 수두룩했지만 이쯤에서 손을 놓기로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몇 날을 씨름해야 할 판이니까요.


책을 정리하니 거실이 넓어졌습니다. 책들이 있던 공간이 비게 되니 깨끗해졌습니다. 그 덕에 아내만 좋아졌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작업실이 생겼으니까요.


저는 버리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지만 이렇게 치우고 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간의 부채감에서 벗어나니 상쾌하기까지 했습니다. 무엇보다 보지도 않을 책을 이고 산 제 자신이 한심하고 미련해 보였지요.


이번에 새롭게 배운 건,  버리는 일은 기분을 홀가분하게 하고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 그리고 집에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정리

#미련내려놓기

#비우기

#명상인류를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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