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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Jan 03. 2023

일상의 삶이 수행이 되려면

명상인류로 점핑하기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이 있지요. 참으면 섣불리 행동하지 않게 되어 불상사를 막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말이 나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참는 걸 잘 못하는 게 원인이겠지요. 순식간에 치솟는 감정을 잠깐이라도 멈춰 바라볼 여유를 갖는다면 수많은 사건과 사고는 절반으로 줄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첫 말과 행동은 거칠고 난폭합니다. 거름장치 없이 자동적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동적인 반응은 날 것 그대로여서 사려와 숙고가 실종된 상태입니다. 자연히 날카롭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지요. 그 무지막지한 칼날에 쉽게 베입니다. 베인 상처는 아프고 오래갑니다. 저에겐 지금도 잊히지 않은, 40년 전의 악몽이 그랬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친구들과 스케치북을 들고 그림을 그리러 다녔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경복궁, 북한산성을 자주 찾았지요. 그림을 잘 그리진 못했지만 학교 미술시간에 어렵지 않게 그림을 뚝딱 그려 제출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교사가 새로 부임해 왔습니다. 키가 작고 열정적인 분이었지요. 그가 와서 우리에게 첫 과제를 던졌습니다. 유명화가의 작품이나 명화, 사진을 모방하여 그려오라는 미션입니다. 이른바 모사 과제입니다. 이것으로 실기 성적을 매기겠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저는 모사할 작품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그때 읽고 있던 펄벅의 <대지> 뒤표지가 떠올랐습니다. 노란 기와를 한 정자였지요.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기와여서 제 관심을 끌었던 같습니다. 이걸 그리면 되겠다 싶었지요. 그리곤 몇 날 며칠을 그리다가 찢어버리기를 몇 차례 한 끝에 미술시간에 맞춰 그림을 가져갔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가져온 그림을 칠판 앞쪽에 세워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한 작품씩 간단히 평을 했습니다. 이건 구도가 어떻고 색감, 표현이 어떻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제게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제 그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지 그쪽에만 신경이 쏠렸으니까요.


이윽고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칠판에 기대어 세웠습니다. 곧 선생님이 제 그림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는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입을 씰룩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노란 기와가 있나? 이건 사실성이 떨어져. 실망이야.” 그러고는 몇 마디 평을 더 하고는 옆 그림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복잡하고 착잡했습니다. 최소한 그림을 그린 사람에게 어떤 대상을 모델로 했는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사실성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고 구도, 표현, 색감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게 맞나? 제일 속상한 건 제가 그린 그림에 대해 방어할 틈도 주지 않고 지나간 것에 대한 억울함이었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분하기도 하고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지요. 당시엔 학생이 교사에게 부당하다는 이유로 따지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니까요. 속으로만 끙끙 앓았습니다.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미술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고, 그림을 그리는 걸 싫어하게 되었지요. 그 이후로 스케치북을 들고 경복궁을 찾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사려 깊지 않은 말은 저를 미술 냉담자로 만들었습니다. 미술의 변방으로 내몰았지요. 그림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의 악몽이 생생하여 가까이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핸드폰으로 그림을 다시 그리고 있지만 비록 감정은 전과 달리 옅어졌지만 그 기억을 여전히 떨궈내지 못하고 있지요. 그때의 말 한마디가 질기고 오래 갑니다.


우리는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잠깐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멈추는 그 사이에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올라오는 생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걸 알아차림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면 부드러움, 친절, 인내가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에 말하거나 행동을 하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태도가 달라지니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의 질이 달라집니다.


잠깐 멈추는 행위만으로도 새로운 선택지가 생깁니다. 말을 해야 할지, 멈춰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를 알게 되지요. 그 효과 중 하나는 전보다 상황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이를 헬리콥터에서 보는 관점이라고 말합니다. 객관적으로 전체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상황, 상대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일상의 삶이 수행이 되려면 그 시작은 멈춤일 겁니다. 그때 비로소 일상의 고통은 지혜가 됩니다. 


#김기섭의수행이필요해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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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반사

#명상인류_점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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