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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Mar 06. 2024

존재모드의 시간

인생학교에서 그림책 읽기


최근 마음챙김 분야에서 핫한 부문으로 마음챙김 양육프로그램을 꼽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챙김을 강조합니다. 양육과 관련하여 여러 당부와 조언이 포함돼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자녀와의 연결성 차원에서 존재모드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존재모드 시간이란 부모가 자녀를 조건 없이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자녀가 잠자기 전도 좋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중 어느 때 해도 상관없습니다.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아이가 말을 잘 들어서도 아니고 공부를 잘해서도 아니고,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서도 아닙니다. 단지 내 앞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조건 없이 안아주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히 여기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은 자녀에겐 어마어마한 힘이 됩니다. 그 힘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자신의 꽃을 피웁니다. 부모가 잔소리를 해도 잔소리로 듣지 않습니다. 자신을 사랑해서 나오는 말로 이해합니다. 설사 마찰이나 갈등이 있더라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마음 밑바닥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신뢰와 존중의 에너지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방법은 아이가 부모에게 하는 것처럼 똑같이 따라하면 됩니다. 대부분의 자녀는 부모를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돈이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명예가 있든 없든, 많이 배웠든 적게 배웠든 상관없이 부모를 환대합니다. 아이처럼 부모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하는 대신 매일 자녀에게 잔소리하기 바쁩니다. 자녀가 어떤 심리적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부모 자신의 기대가 우선이다 보니 자신의 기대대로 욕심대로 따라주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세운 질서에 자녀가 복종하기를 요구합니다. 만에 하나 기대에서 벗어나면 아이를 닦달하기 일쑤입니다.


그 때문에 아이와 마찰을 빚고 갈등을 겪습니다. 과거의 일까지 끌어와 스스로 불덩이가 됩니다. 말다툼으로 시작된 작은 일이 때때로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됩니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지경까지 치닫습니다.


그림책 《난 그냥 나야》는 존재 자체로 온전히 인정해달라고 목소리를 냅니다. 부모에게 자녀의 모습이 어떠하든 존중해달라고 말합니다. 조건 없이, 바라는 마음 없이 소중한 존재임을 먼저 인정해달라는 것입니다.

 

초승달은 보름달이 되기 위해 있지 않고,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야구공은 축구공이 되려고 하지 않고 조약돌은 바위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또 작은 차는 큰 차가 되려고 하지 않고 멸치는 고래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말이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화자인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고 어른이 되기 위해 태어나지도 않았다면서. 그리고 이렇게 외칩니다. “난 그냥 나야.” “네가 그냥 너인 것처럼.”


부모들 눈에 자녀는 여전히 모자라고 부족합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부모가 많지 않습니다. 대신에 ‘너는 왜 나처럼 하지 못해’ 라며 재촉합니다. 문제는 자녀가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할 때입니다. 부모의 기대를 채우는 자녀는 그렇게 하는 자녀보다 많지 않습니다.   


왜 나처럼 못 하느냐고 요구하는 건 부모의 욕심입니다. 자녀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처사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기대대로 살려면 어린 시절 누려야 할 권리를 송두리째 포기해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 어렵습니다.   


작가는 “모든 시절의 나는 그 자체로 온전한 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라 느끼며 무언가를 향해 허우적대던 그 시절의 나도, 지금의 나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다”라고 선언합니다. 작가의 말은 이 세상 모든 부모, 모든 어른을 향해 외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테스 침대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악당인 프로크루테스는 지나가는 여행객을 유인하여 집으로 데려간 뒤 잔혹한 짓을 벌입니다. 여행자를 자신의 침대를 눕히고는 키가 크면 발목을 자르고 키가 작으면 늘리는 잔인한 행위를 저지릅니다. 침대에 딱 맞으면 노예로 삼습니다.


자녀를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는 프로크루테스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잘 키우겠다는 의도를 앞세우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말을 앞세워도 자신의 기준에 맞춰 비교하고 재단하고 평가한다면 프로크루테스입니다.   


프로크루테스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자신 또한 똑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이런 불행을 겪지 않으려면 자녀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인정해야 합니다. 자녀와 함께 하는 존재모드 시간은 작은 출발점입니다.


#그림책이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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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테스침대

#난그냥나야

#명상인류로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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