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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Mar 26. 2024

일시성을 알면 삶이 즐거워진다

지금, 여기


옛날 불교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서로를 아끼며 사이좋게 사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이 가족은 마을 사람들의 칭찬거리였고, 존경을 받는 모범가족으로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안의 장남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가족이 비통에 빠져 슬퍼할 거라고 단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으니 당연한 노릇이라고 믿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족을 위로하려고 서둘러 집을 찾았습니다.


막상 집에 도착해 본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아들을 잃은 가족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잃었다는 비통함은 어디에도 찾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가족 한 사람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신들이 이렇게 웃으며 행복한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가족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언젠가 서로 헤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이별하게 될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언제든 서로 헤어질 것처럼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가족 중 한 사람이 떠나는 때가 되었고, 그들은 마음의 준비를 모두 마치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에서 임종 맞은 사람들이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걸 돕는 호스피스 프로젝트를 진행한 프랭크 오스타세스키가 지은 《다섯 개의 초대장》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그 어떤 고통보다 심하고 괴롭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이 겪어야 하는 상실의 아픔이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습니다. 특히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경우 아무리 준비를 잘했다고 해도 당혹스럽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지금껏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부인하고 도망쳐도 회피하지 못하는 불가항력의 존재가 바로 죽음입니다. 언제나 죽음은 우리 삶의 문가에 도착해 있고, 그것은 바꿀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잊는 사실 중 하나는, 죽음은 당장,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나중에 온다고 생각합니다. 프랭크 오스타세스키는 그 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지금 죽음에 대해 많이 걱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나중에’라는 생각으로 안전한 거리를 암시하는 편리한 환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끊임없는 변화, 덧없이 지나가는 일시성은 나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지금이다. 변화는 일상이자 표준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거나 집착할 때 절망에 빠집니다. 부인하고 부정하는 것은 ‘삶에 대한 비이성적인 기대’입니다. 내 옆에 있던 것은 언젠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영원히 머물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은 과정이고 일시적입니다.


이 일시성을 받아들이면 우리도 우화의 가족처럼 행복한 얼굴을 짓게 될까요? 역설적으로 죽음이 즐거운 사건이 되진 못해도 애통의 정도는 줄어들지도 모를 일입니다.


*숙고명상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확실한 사건이지만,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른다는 점에서 불확실한 사건이다. 삶이 일시적이란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당신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그렇다면 남은 삶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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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오스타세스키_《다섯 개의 초대장》

#명상인류로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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