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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by 심월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줄곧 영혼의 자리를 묻습니다. 그의 언명은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자기 영혼의 움직임을 살피지 않는 자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남의 마음속 사정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한 게 아니라, 자기 영혼의 행방을 모른 채 사는 사람이 불행하다는 겁니다. 진정한 주인공으로 살기 어렵다는 말이지요.

그는 묻습니다.

지금 나는 내 영혼을 어떤 목적에 쓰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영혼을 갖고 있는가. 아이의 영혼인가, 폭군의 영혼인가, 아니면 짐승의 영혼인가.

질문은 매섭지만 동시에 우리를 깊이 흔들어 깨웁니다.


단 하루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혁명의 미래를 꿈꾸었다.


김남주 시인의 시 〈오늘 하루〉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시인은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이 얼마나 영혼을 소홀히 했는지, 사랑과 이해보다 미움과 분노에 휩싸여 있었는지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결국 단 하루조차 사람답게 살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시를 맺습니다.

아우렐리우스가 묻던 ‘나는 지금 누구의 영혼을 갖고 있는가?’라는 물음과 닮아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하루의 삶을 비추어보며 영혼의 현주소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영혼을 추적하지 않는 삶은 곧 자신을 잃는 삶이라는 철학자의 말과, 시인이 토해낸 후회와 성찰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영혼의 자리를 묻는 물음은 고대 철학자나 시인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축과 요안나 콘세이요가 함께 만든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 역시 같은 물음을 던집니다.

주인공 얀은 틀에 박힌 일상과 과속하는 삶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출장지 호텔방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얀이 찾아간 의사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곤 하지요.”


얀은 그 말을 듣고 도시 변두리 작은 집에 머물며 영혼을 기다립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창가에 앉아 고요히 시간을 보냅니다. 수염이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말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오솔길 끝에서 지친 모습의 영혼이 걸어옵니다. 먼 길을 헤매다 주인을 찾은 영혼,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웃음을 되찾은 얀. 두 존재가 다시 만나는 순간, 집안 가득 따스한 빛이 번집니다.


인디언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한참 말을 달린 뒤엔 잠시 멈춘다.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지혜가 전해 옵니다. 그림책은 그 지혜를 오늘의 언어로 옮겨 놓은 셈입니다.

영혼을 잃어버린 얀은 기다림을 통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한 “자신의 영혼을 추적하라”는 당부를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김남주 시인의 시가 보여주듯, 하루의 사소한 선택조차 영혼의 자리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매 순간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내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내 속도를 따라오고 있는가. 혹은 길 어딘가에서 헐떡이며 나를 찾고 있지는 않은가.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 걸음을 늦추고 마음의 움직임을 살피는 일. 그러한 사소한 행위가, 어쩌면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깊은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당신의 영혼은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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