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비(Bowlby)의 애도 단계에서 배우는 지혜
상담을 하다 보면 애석하게도 어린 아이나 청소년이 사랑하는 부모의 상실을 경험하는 사례를 종종 만난다. 아빠의 죽음을 처음 알게 된 그날부터 평생토록 이어진 ‘세상에 부모의 죽음을 경험하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의 해답은 ‘나 혼자만 이런 일을 겪는 건 아니다.’였다. 그렇다면 ‘부모를 상실한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상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어린 시절 아빠의 죽음을 경험한 나에게도, 상실의 슬픔에 무너진 아이를 돕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질문이다.
여기서는 아이들의 애도 단계를 연구한 볼비(Bowlby)에게서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
애착 이론의 창시자 볼비(Bowlby)는 인간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행동 패턴을 가지고 태어나고, 최초의 대상인 부모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성격이 형성된다고 주장하였다. 애착 이론과 더불어 애도 단계를 연구한 그에 의하면, 애도 단계는 무감각(numbness), 그리움과 탐색(yearning and searching), 혼란과 절망(disorganization and despair), 재조직화(reorganization)로 나뉜다.
무감각의 단계에서 아이들은 상실의 고통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죽음을 부인하고 회피하는 것은 상실의 고통에 의해 무기력해지지 않도록 애쓰는 심리적 차단으로 볼 수 있다.
그리움과 탐색의 단계에서 아이들은 떠난 부모에 대한 갈망에 시달리게 된다. 애타는 그리움 속에 울부짖으며 간절하게 상실한 이를 찾는다. 이때, 자연스럽게 떠난 이나 남겨진 자에게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왜 죽었느냐고. 왜 죽은 이를 지키지 못했느냐고. 그림책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에서 엄마의 죽음을 경험한 아이는 자신이 잘못한 일들을 고백하며 엄마가 없는 게 싫다고 엉엉 운다. 엄마를 애타게 찾으며 그리워하는 아이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유령이 된 엄마라도 만나고 싶어 한다.
혼란과 절망의 단계에서는 삶에 대한 가치를 잃고 무기력해진다. 심각하면 죽음에 대한 유혹에 시달릴 수도 있다. 가장 고통스러운 이별의 시기로 누군가의 돌봄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재조직화 단계에서는 떠난 부모에 대한 추억이나 말들을 마음 깊이 새기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게 된다. 서서히 상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애착 대상을 찾아 나선다.
그림책 <무릎 딱지>에서 엄마가 죽은 후로 혼란스러웠던 아이는 자신의 무릎에 상처가 났을 때, 위로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경험한다. 이날부터 아이는 내면화된 엄마의 존재를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일부러 상처를 낸다. 아이는 이토록 아픈 방법으로 엄마를 그리워하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수용해주는 할머니를 만난다. 무릎 딱지에 새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엄마가 죽었어도 내 마음 안에 엄마가 살아 숨 쉰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서서히 회복의 시간을 거쳐 새로운 애착 대상을 찾아 나선다.
이런 과정 속에 어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남겨진 어른은 아이가 충격받을 것을 염려해서 부모가 죽은 경우, 장례식장에 데려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볼비를 포함한 많은 심리학자는 아이들에게도 애도 의식을 통해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죽은 부모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위안이라는 이유로 ‘먼 여행을 떠났어’ 등의 애매모호하게 지어낸 이야기는 아이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죽은 사람은 숨을 쉬지 않고, 먹거나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줘서 죽은 부모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죽은 부모가 다시 살아 돌아왔으면 하는 아이의 비탄과 간절한 바람은 받아들여져야 한다.
남겨진 아이들에게 더욱 상처가 되는 건... 죽은 부모에 대해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던 존재처럼 여기고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평생 아빠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우리 집은 말할 수 없는 비밀, 금지된 비밀이 공기처럼 무겁게 떠다녔다. 묵직함은 언니와 나, 엄마 사이에 아빠 이야기 외에도 힘든 이야기는 전혀 나눌 수 없던 분위기로 이끌었다. 그래서 늘 외로웠다.
감정표현이 미숙한 아이에게도 소중한 가족을 잃은 슬픔에 귀를 기울여주고 상실에 대해 슬퍼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가고 게임을 하고 노는 아이들을 보면, 상실이 아이에게 큰 충격이 되지 않는구나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상실의 슬픔을 눈물, 우울, 초조함으로만 연결시키는 어른의 생각일 뿐이다.
아이들은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그저 억누르고 있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기댈 품을 내어주고 함께 한다면 아이는 갑자기 눈물을 쏟는 날이 있을 것이다. '갑자기 왜 우냐?'라고 다그치지 않고, 그럴 때에도 여전히 함께 있어주는 것. 아이의 리듬에 따라 슬픔에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다양한 감정을 그림 등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다고 아이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강요해선 안된다. 이야기하기 힘들어할 땐 기다림도 필요하다.
때론 아이가 우울과 슬픔의 가면인 잦은 짜증을 낼 수도 있다.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이들을 향한 분노, 원망 등을 쏟아낼 때에도 한결같이 견뎌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어려운 것은 남은 한쪽 부모의 고통도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남겨진 부모도 상실의 고통에 헤매고 있는데 아이의 슬픔, 짜증, 무기력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때 아이가 주변에 믿을만한 어른(이모, 삼촌 등)이나 상담자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상처로부터 잘 회복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어른보다 더 빠르게 새살이 돋고 상처가 아문다. 하물며 마음의 상처는 어떠하랴. 기다려주고 지지해주는 어른이 옆에 존재한다면, 아이는 금세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그럭저럭 잘 자란 나도, 당신도 존재하지 않는가?
밝게 빛나는 햇살이 비추는 날도, 잔잔한 봄비가 내리는 날도,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도, 굵은 장댓비가 내리는 날도, 거센 폭풍우 치는 밤도, 움츠려 들게 하지만 예쁜 눈이 날리는 날도 있다.
그런저런 날씨처럼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감정은 끊임없이 변할 것이다.
상실이 아이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회복할 수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너무 두려워하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