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의 자수 Dec 16. 2022

마흔, 펌이 필요한 나이

수영모 벗은 날


얼마 전, 친구들이 오랜만에 놀러 왔다.

고등학교 때 사랑했던 '지란지교를 꿈꾸며' 시처럼 허물없이, 머리를 감지 않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였기에... 머리도 감지 않은 채 친구를 맞이 했다.


"너 머리 왜 이래?"

"나? 머리 안 감았는데!"

"파마 안 한 거 아니지?"

"한지 꽤 됐지. 아침마다 다이슨으로 원래 뽕을 띄워야 하는데..."

"야. 우리 나이에 파마를 안 한다는 건 수영모자를 쓰고 다니겠다는 얘기랑 똑같아"



친구의 갑작스러운 심각함에 나는 웃음이 빵 터졌다.

"뭐? 수영모? 대박!!! 내 머리 그렇게 심각한 거야?!"






그날 이후 아침마다 화장대에 앉아 내 머리만 보면 수영모 쓴 내가 생각나서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어느덧 마흔이 넘어가니 머리가 축축 가라앉는다. 물먹은 스펀지 마냥 무겁고도 초라하게 '추욱~~~'


어릴 적엔 '말총머리네', '머리숱이 많아 머리 감기 힘들겠네.'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는데 이제는...

'나날이 머리가 빠져 보이네. 수영모를 썼네 마네'의 이야기를 듣다니.


무서우리만치 빠져대는 머리카락도 문제지만 머리카락 자체가 점점 얇아진다.

(뱃살은 점점 둥글해져 가는데 머리카락은 당최 얇아지는 이유는 뭔지.. 쩝)


아침이면 큰 맘먹고 산 다이슨으로 열심히 뽕을 세우지만 뒤돌아서면 수영모가 내 머리통에 척하니 씌워졌다. 우리 엄마가 왜 40대부터는 왜 그토록 머리 뿌리부터 뽀글뽀글한 아줌마 빠마 머리를 고집했는지 이제는 매우! 잘 알 것 같았다.


일요일 저녁! 수영모 벗으러 가야겠다.

큰맘 먹고 6개월 만에 미용실을 방문했다.

"최대한 뽕을 살려주세요! 수영모 안 쓴 것처럼요!"

내 나이대와 비슷한 미용사 언니가 "늙는다는 게 참 서글퍼요. 그렇죠?"라며 키득거린다.

애잔함과 키득거림 사이에서 수영모를 벗겨내는 대수술이 시작되었다.

언니의 과감한 처방전은 '레이어드 컷에 컬을 탱글 하게 넣기'



드디어 완성!

만족스러운 언니의 웃음!

혼자 신이 나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둘째 딸이 달려 나와 한숨을 쉬더니 "엄마 앞머리 자르니까 뭔가 이상해"

"왜? 조금이라도 어려 보이려고 한 거야!"

첫째 딸이 달려 나와 풋 웃음을 터트리더니


"엄마! 양 같아"



"야!!! 엄마 머리숱 많아 보이려고 이렇게 한 거야!"

"어! 어쨌든 양 같아. 굉장히!"

"음메~~ 음메~~~ " (이넘의 쉑키가!!!)


내일 출근을 슬퍼하며, 딸들의 폭언에 슬퍼하며... 한주를 마감했다.


그래도.....

'흠... 어쨌든 성공적이네. 수영모 대신 양 한 마리가 내 머리 위에 있으니...

그만큼 풍성해졌단 이야기지 뭐.'










마흔의 다정함은 펌인 걸로~

오늘의 미용실은 해피엔딩인 걸로!!!

메에~~ 메에~~~'







매거진의 이전글 인스타그램 시대에서 살아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