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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Dec 28. 2022

엄마, 저 야경의 불빛 하나하나가 희망 같아





하루 전날부터 혼자서 사부작거리며 야심 차게 준비한 남편의 오븐 삼겹살 구이. 입도 즐겁고 눈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시어머니와 형님까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둘러앉은 크리스마스 저녁이었다. 소박한 선물을 건네며 어색한 듯 오묘한 듯 오고 가는 대화 속에 한쪽 구석에선 다툼이 벌어졌다.


"꼰대 같아."


이 말 한마디가 화근이었다.

최근 부쩍이나 투닥거리는 부녀지간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첫째 딸은 울고 있었고 남편은 울그락불그락 씩씩거렸다.

남편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큰소리로 아이를 혼냈다. 이에 지지 않고 말대답하던 아이는 끝내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어른들이 계시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숨이 가득해졌다. 하지만 한마디 잘못 내뱉다간 자칫 부부싸움으로도 번질 수 있어 애꿎은 입술만 우물거린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아이가 걱정스러워 아이의 방으로 다가갔다.

'똑똑똑'

한동안 대답이 없는 문은 굳게 닫힌 아이의 마음 같았다.



빼꼼.

잠시 후, 아이가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이야?"

"... 꼰대라고 했더니 아빠가 계속 뭐라고 하잖아.

.............. 엄마! 저기 불빛 보여? 창밖에 건물들 야경이 보이잖아.... 난 저 불빛 하나하나가 희망이라고 생각해. 밤마다 희망을 세어봐"

오도카니 침대에 앉아,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의 담담한 고백에는 슬픔이 서려있었다.

"그래. 네 방에서 희망을 셀 수 있어 참 좋다."






© miglu_in_blue, 출처 Unsplash





내게도 작은 불빛 하나에 의지해 희망을 셈하던 시절이 있었다.

꼬깃꼬깃, 구겨졌던 희망을 고이 쥐고 대학 입학을 위해 제주도에서 상경했던 그때.

앞, 뒤 가릴 것 없었던 그때.

사실 그 희망이란 녀석은 번번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제주도에선 아무리 그래도 옥탑방 없었는데... 가난했던 스무 살에 상경한 나에게는 옥탑방만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터전이었다.

소란한 청춘의 소리가 가득했던 대학가.

누가 볼까 부끄러워하며 계단 끝을 오르기가 무섭게 방으로 숨어들곤 했다.


그리고 2년 뒤.............

사정은 더욱 딱해졌다.

그래도 하늘을 볼 수 있었던 옥탑방에서 땅밑으로 꼬꾸라져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갔다.

반지하, 창이라곤 내 얼굴 4배 정도 될만한 작은 창만 덩그러니 지상과 이어져있었다.

해가 쨍쨍한 화창한 날도, 빗물 적시는 흐린 날도 그곳엔 늘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둠 속의 적막함보다 더 나를 외롭게 했던 건, 윗집 사람들의 화목한 웃음소리였다.

낮동안에는 주인 가족의 두런두런 행복한 수다와 행복한 웃음에 쪼그라들었고,

밤동안에는 숨죽인 싸늘한 공기 속에 쪼그라들었다.

쪼그라든 몸이지만, 마음에는 희망을 품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어. "

밤마다 창밖의 작은 빛에 기대어 생각하곤 했다.

이 작은 빛이 너른 빛으로 퍼져나갈 날이 올 거라고.

지금은 희미해 보이는 빛이지만 내게도 언젠가 너른 창을 보며 웃을 수 있는 날이 다가올 거라고.

저렇게 함께 웃을 수 있는 가족이 내게도 생길 거라고.



.................


어른이 된다면, 엄마가 된다면..

반지하방에서 수도 없이 그렸던 양옥집의 도란한 네 식구처럼 '하하 호호' 자주 웃고 싶었다.

가족들과 함께 행복을 그리고 싶었다.


이런 날이면 스물두 살의 내가 찾아온다.

그리고 묻곤 한다.

스물두 살의 네가 그렸던 세상에 지금 잘 살고 있냐고.


............


오늘은 가만히 아이에게 엄마의 반지하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물두 살의 엄마가 세었던 희망의 불빛과 열세 살의 네가 세고 있는 희망의 불빛에 대해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눴다.


.....


때론 다퉈서 속상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엄마는 희망의 불빛이 수도 없이 새겨진 방을 너에게 선물해줄 수 있어 참 감사하다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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