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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22. 2023

별당아씨의 고객 유치 작전

"별당아씨"

처음 학교에서 근무할 때, 교감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별명이다.      

'별당'은 '본채의 옆이나 뒤에 따로 지은 집이나 방'이란 뜻이다. 상담교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 많은 선생님이 근무하는 교무실이라 불리는 학교 본채에서 벗어난 뒷공간이나 옆공간 교실, 상담실에 근무하기에 '별당아씨'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것이다. 학교에서 몇 안 되는 비교과 교사로 주인아씨가 아닌 '별당 아씨'란 별명이 싫지 않았고 정겨웠다. 비록 소설 <토지>에 나오는 서희의 생모 별당아씨는 비극적이고도 슬픈 사랑을 했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별당아씨의 운명이란 그런 건가보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삶, 누군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삶.

갑자기 왠 슬픈 사랑 타령인가 하겠지만 학교에서 전문상담교사로 근무하는 하루하루가 이와 같았다.           

학교 선생님은 대부분 학년부 혹은 업무 담당 부서별로 교무실에 배치되고 여럿이서 함께 근무한다. 어쩔 수 없이 교무실을 같이 써야 하는 선생님들은 고달픈 인간관계 속에 상담실에서 혼자 근무하는 나를 부러워한다. 반면, 어떤 선생님들은 종종 혼자 있으면 적막하고 외롭지 않냐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낸다. 나는 과연 어느 쪽일까? 다분히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적막함과 고요함 속에 처음에는 못내 외로웠다. 교실과 운동장은 많은 이들이 함께 왁자지껄한데 혼자서 외딴섬에 홀로 외로이 떠있는 기분이랄까?           

그때 당시만 해도 위클래스(상담실)가 생소한 탓에 찾아오는 이도 별로 없었다. Wee는 We(우리들), Education(교육), Emotion(감성)이란 의미로 아이들이 편안하게 올 수 있는 상담실, 고민이 있는 학생이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공간의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정작 아이들에겐 상담실이란 공간이 편안하진 않았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담실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처벌받는 곳으로 생각했다. 학교폭력, 흡연 등의 문제가 생겨 학교생활교육위원회,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처분으로 '상담'이 주어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이들 사이에선 상담을 잘못 받았다가는 비밀 보장은커녕 온 동네가 다 알게 된다는 헛소문이 맴돌았다. (지금도 네이버 지식in에는 이런 질문이 허다하다.)         


'중딩은 여드름만큼 고민투성이니, 아이들이 엄청 찾아올 거야. 스케줄 조정을 어떻게 하지?'

걱정했던 오만은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하루 반나절만에 깨지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만나 별당 아씨의 존재를 알려야 했다. 아이들이 와야 내 고유 업무인 상담을 진행할 수 있을 터이니 한시가 급했다. 

그러니 '별당아씨'가 고상하고 우아하게 별당에만 거처하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존재의 위기가 찾아왔다.           

일단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누볐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웃음을 건네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샘은 누구예요?' 묻기가 무섭게 위클래스(상담실) 위치를 알려주며 이따 찾아오면 사탕, 초콜릿 등을 주겠노라며 꼬신다. 점심시간에 오면 보드게임도 할 수 있다고 너무 근사하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행복터, 힐링 클래스 등 상담실의 다른 이름을 짓고 점심마다 다양한 행사를 펼쳤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상담교사인지, 행사 진행자인지 헷갈릴 정도였지만, '고객 유치를 위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라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아이들을 기다렸다. 별당아씨의 고객 유치 수완이 꽤나 괜찮았는지 하나, 둘 상담실을 찾아왔고 하나 둘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쌓여갔다.      

.....     


한창 뛰노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비단 무겁고 진지한 상담만은 아닐 것이다. 때론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재미와 장난기 머금은 가벼운 유머, 이를 통해 함께 웃을 수 있다면... 때가 되면 아이들은 자기 안에 꽁꽁 감쳐둔 자기만의 세계를 펼쳐 보여줄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는 일. 메마른 땅에 씨앗을 심고, 촉촉한 물을 주는 일. 언제나 새싹이 싹틀까 기다리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었다. 아이들이 별당 거리로 곧 찾아올 날이 멀지 않았다 믿으며....      


별당아씨는 별당 귀퉁이에 서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햇볕 바른 운동장만큼 곧 따뜻해질 별당 거리를 상상하며.. 별당 거리에 모여 재잘재잘 떠들고, 웃고, 울 날이 움트길 기다리며...그렇게 사랑하는 이를 서성이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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