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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Nov 02. 2021

달림과 멈춤. 기로에 선 마흔에게

마흔에게 SM5가 건넨 편지

  달림과 멈춤. 기로에 선 마흔에게

내 인생의 절반쯤, 당신을 만났습니다. 당신도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막 들어섰다고 들었어요. 우리 둘이 닮은 점이 있다면 인생의 중반부 언저리 어디쯤. 서 있네요. 이제까지 당신은 스스로 나를 데리고 어딘가를 가기보다 옆자리에서 늘 지켜보곤 했었죠. 그랬던 당신이 이제는 나를 몰고 어딘가로 가기 시작합니다. 벌써 2년이란 시간을 당신과 함께 하고 있어요.      


매일 아침,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세상을 향해 나가는 첫 발걸음을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 반갑습니다. 반가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신은 늘 그렇듯 허겁지겁 달려와 급히 나를 깨웁니다. 난 단잠에서 깨어나 당신의 기도 소리를 듣습니다. 한 순간의 짤막한 몇 마디 기도 속에 의미 있는 하루를 준비하는 당신의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루틴 한 일상 속에 당신을 만나는 이야깃거리가 쌓여갑니다. 어떤 날은 옛 추억에 젖었는지 10년도 더 된 CD음반을 듣네요. 며칠 동안 한 곡을 반복해서 듣는 걸 보니, 마음 어느 한 곳에 자리 잡은 옛 추억에 빠졌나 봅니다. 눈물 한 방울 훔치는 걸 보니, 마음은 괜찮은 건지 묻고 싶어요. 또 다른 날에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신나게 웃고 있네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여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소리 지르며 따라 부르니 내 몸이 흔들흔들 출렁거리기도 하지만 당신이 기분 좋다면 그 어떤 것도 전 괜찮답니다.    

   

많은 일들을 해나가는 당신의 삶이 더욱 바빠져서 일까요? 진정한 자기(Self)를 찾아 헤맨다는 중년의 위기 속에 흔들리는 걸까요? 올해부터 당신이 달라졌어요. 빨리 달리는 내가 무섭다고 도로가 텅텅 비어있어도, 당신의 남편이 이럴 땐 빨리 달려야 한다고 핀잔을 주어도, 천천히 달리던 당신이 무섭게 내달리고 있어요.


겨우 4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가면서 왜 이렇게 마음이 바쁜가요? 10분-15분 남짓 걸리는 시간을 얼마나 절약하겠다고 날 그리도 재촉하시나요? 아름답게 다시 돌아온 가을이라는 계절의 문턱을 함께 누리고 싶었는데 당신은 내달리기 바쁘네요. 주인이 아닌 옆자리에 앉아있을 땐..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 말했죠. 도시의 분주함을 달릴 때도, 시골의 여유로움을 달릴 때도 당신은 그 풍경 그대로를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이었어요.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을 행복해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랬던 당신이 숨 돌릴 틈 없이 나를 움직이려 합니다. 난 이제 나이가 먹어 달릴 준비를 하려면 꽤나 시간이 필요한데 잠이 덜 깬 나를 재촉하네요. 난 이제 중년이 되어 쏜살같이 달리기엔 한계가 있는데 당신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나를 세게 밟네요. 버겁고 힘들지만 당신 뜻을 따르려 애씁니다.


 이 긴장감을 라디오 DJ가 눈치챘는지 재미난 사연을 들려줘요. 당신과 함께 배꼽 잡고 웃을 준비를 하는데 당신은 어쩐 일인지 도통 웃지 않네요. 아마 당신은 다른 생각 속에 빠져 이 재미나고 웃긴 사연이 들리지 않나 봅니다. 중얼중얼.. 오늘 할 일을 무수히도 읊어대네요. 오늘따라 유난히 안타까움이 느껴져요.        


   

앗!! 기회가 왔어요. 당신이 멈춰 설 시간이...

숨 가쁘게 달리는 당신 앞에 거대한 괴물 같은 덤프트럭이 떡 하니 서있어요. 아유. 이 길은 당신이 맘 놓고 내달리는 길인데 고소하기도 하고 느긋이 쉬어갈 타임이 온 저는 마냥 기분이 좋아요. 온 세상이 멈춰버린 듯한 이 시간 속에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아오.’ 한숨을 깊이 내쉬던 당신이 갑자기 저의 팔을 두 손으로 팍 치네요. 우리 키보다 한 자락은 더 높은 거대한 짐 트럭 앞에 가려진 당신의 눈이 어두컴컴해지리라 생각했는데 한없이 반짝이고 있어요. 나지막이 내뱉는 당신의 잔잔한 혼잣말에 미소가 머금어져요.

“아. 그래. 나 요즘 왜 이렇게 달리는 거야? 빨리 간들, 천천히 간들 고작 5분 차이인데. 뭐가 그리 급했던 거지? 내 마음의 조급함. 하루하루 무언가를 더 빨리 해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나를 괴롭게 하네. 아직 늦지 않았어. 천천히 가도 괜찮아.”




그랬군요. 당신... 

중년의 문턱에서 편안하게, 느긋하게 사는 삶보다 늦기 전에 더 내달려야 할 것 같은 당신의 마음이 나를 이리도 재촉하였군요. 당신 말대로 겨우 5분 차이예요. 당신 인생의 긴 여정 속에서도 겨우 몇 걸음 차이일 뿐이에요. 젊은 시절, 길게만 느껴졌던 하루가 더없이 짧게 느껴져 아쉬움 속에 다급하겠지만 지금의 나이다운 속도가 우리에겐 필요해요.


 푸르던 청춘, 뜨거운 열정이 때론 가슴 저리도록 그립겠죠. 여전히 가슴 뛰지만 젊은 시절만큼 생생 내달릴 수 없어 때론 가슴 시리도록 서글프겠죠. 하지만 지금. 젊음의 끝자락과 늙음의 출발선 사이인 지금도 아름다운 시간이랍니다. 인생은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흘러갈 테지만 당신이 두 발 내딛고 서있는 지금-여기(here-and-now) 이곳은 오로지 당신의 것이에요. 이 시간 우리.. 찬란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 시간... 달림과 멈춤의 기로에서 천천히 걸어가요.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진정한 당신이 되라는 내면의 신호다.

....

Life really does begin at forty.

Up until then, you are just doing research.

-Carl Gustav Jung-


<글감 주제: 내 삶과 가장 밀접한 사물 고르기, 그 사물이 되어 나에 관한 이야기 쓰기>

매일 만나는 SM5 자동차가 이렇게 다정하게 말걸어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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