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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Nov 27. 2021

구도시에 사는 마흔

마흔은 외부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나를 가다듬고 바로 세워야 할 나이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어마 무시하게 넓은 12차선의 도로를 건너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12차선을 사이로 구도시와 신도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구도시에는 10층 높이의 낮은 아파트, 건너편 신도시에는 30층이 훌쩍 넘는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곧게 뻗어있는 고층 아파트에 비해 한없이 낮은 구도시의 아파트는 왠지 아주 겸손해 보인다. 단지 아파트의 키 차이일 뿐인데 가끔 근거 없이 내 자존심도 같이 흔들린다. 어릴 적, 키가 큰 친구랑 같이 다니다 더 작아 보인다고 놀림을 받았던 일도 생각나면서 말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신도시일 때가 있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00 신도시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방에서 설렘 담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너도 나도 달려왔을 것이다. '아 우리도 새 아파트에 살 수 있겠구나.' 새로운 보금자리에 희망을 품고 너무 좋았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은 그저 흘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스란히 신도시는 나이 먹은 구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맞은편으로 새로운 신도시가 펼쳐졌다.


새로운 신도시에는 화려한 조명과 불빛이 가득 차 있고, 구도시에는 고즈넉한 가로등이 고개 숙인 채 조용히 빛을 발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조차도 낡은 구멍가게보다는 화려하고 편리한 마트가 좋다. 낡은 식당보다는 화려하고 인테리어가 잘된 식당을 찾아다닌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오래되고, 불편하고, 낡은 아파트보다는 새로운 신축의 편한 아파트에 살고 싶은 마음이 당연할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사는 아파트와 신도시 아파트 가격의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그때, 이사를 갈까 고민하다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아 주저했다. 그 주저함은 2억이라는 아파트 가격 차이의 결과를 남겼다. 가끔은 신도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부럽다. 나도 모르게 비교되고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진다. 스무살에 서울에 상경해서 반지하 방, 옥탑방에 살 때에 비하면 너무나도 괜찮아졌는데 건너편 저 집과 비교하고 있다.


마흔이 넘어가니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부동산으로 돈을 번 이야기, 땅을 산 이야기, 주식을 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몇 억씩 번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다. 솔직히 배도 아프다. 그 후에 밀려오는 좌절감에 휘청일 때도 있다.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에서 패배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더 뒤처질까 싶어 주식도 은근슬쩍 발을 담갔는데 파란불이 가득하다. 하아. 돈버는 일에는 똥손인가보다. 부동산은 자본도 없고 쫄보라 근처에도 못 가봤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하는 것도 공부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한데 노력을 안 했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학창 시절에 수학을 그렇게 못했던 것도 아닌데 숫자는 잘 모르겠다. 돈은 정말 잘 모르겠다. 가끔 친구들하고 돈 안 되는 상담 공부를 할 게 아니라 주식 공부를 했어야 했다며 후회 아닌 후회,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를 한다. 결론은 돈이 안돼도 이 공부가 재밌고, 이 일이 좋은걸 어떻게 하겠냐 그저 허허 웃고 말지만.




 2년 전, 미얀마에 선교여행을 간 적이 있다. 산지에서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이 살았던 고아원에 2주간 방문했다. 아이들의 침대는 나무판자, 딱딱한 돌침대가 그대로 드러나있었고, 이불 하나 가방 하나 제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빨랫줄에는 따사로운 해가 얄미울 정도로 구멍이 나고 빛바랜 옷을 환하게 내비쳤다. 그래도 아이들은 해맑은 웃음이 가득했다. 이 아이들보다 행복한 아이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아이들보다 표정이 밝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태국 방콕의 큰 호텔에서 묶었다. 극과 극을 오간 느낌이다. 40층이나 되는 호텔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화려한 조명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흔들. 이런 곳에서 평생 살면 너무 행복하겠다 싶었다. 이렇게 좋은 곳에 사는 부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부자가 된 공상 속에 빠져 있을 때 미얀마의 그곳이 떠올랐다. 딱딱한 철재 침대에 누울 아이들, 1년에 한두 번 고기를 먹을 수 있을 아이들, 동물들이나 태울 법한 차에 타는 사람들. 수없이 매달려 있던 사람들..............



더 높아지려는 삶, 더 가지려는 삶보다.... 돈으로 삶의  행복을 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날의 다짐이 무색해졌다. 마흔이 되니 더욱 돈에 흔들리고, 비교하게 된다...... 스토리텔러 박상미 교수가 "마흔은 외부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나를 가다듬고 바로 세워야 할 나이."라고 이야기했다. 참 어렵다. 외부의 조건, 돈이나 명예 등에 흔들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그저 내가 처한 곳에서 나를 가다듬고 세워야 할 시기.


잘할 수 있을까?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내가 삶에서 좇아야 할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회복시켜야 할 텐데. 그래야 나이 오십을 더 잘 맞이할 수 있을 텐데.

혼돈과 정리. 망설임과 의지. 속에  여전히 흔들리면서 나아갈 것이다.


시간은 흐를 테고, 20년 뒤에는 내가 사는 아파트가 재건축을 한다면 더 좋아지지 않겠나. 지금 건너편 아파트 단지가 구도시가 되고 내가 사는 곳이 신도시가 다시 되지 않겠나. 허허허. 나 그럼 몇 살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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