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의 자수 Dec 06. 2021

마흔, 시어머니를 여자로 만나는 시간



"00에 이것저것 구경하고 살 수 있는 예쁜 아울렛이 생겼어. 거기에 아이들 선물 사주러 같이 갈래?"

손녀딸이 처음 도전한 경시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얻은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신다. 일흔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소녀 같은 목소리, 해맑은 웃음소리, 천진난만하게 들떠 있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좋다. 감사하게도 아직 일도, 자원봉사도 하시는 정정하신 시어머니. 병원비 외에 돈을 쓸 일이 없다며 손녀딸들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어 하신다.


엄마가 비싸다고 잘 사주지 않는 레고도, 슬라임도 척척 사주시니 아이들은 할머니를 좋아한다. 혹여나 내가 싫어할까 봐 시어머니께선 아이들에게 이걸 사주자고 먼저 이야기하시고, 아이들 타박하지 말라고 하신다. 아이들은 내 눈치를 잠시 보더니, 할머니 뒤편에 서서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아기 때부터 할머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듣고, 성경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어느새 키가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할머니와 나란히 걷는다. 뒷모습을 바라보니 세월이 흐름이 느껴져 괜히 마음이 울적하다.


처음부터 시어머니가 편했던 것은 결단코 아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소녀 같은 어머니 맘에 들기 위해, 장미꽃 백송이를 한 아름 사서 안겨드리기도 하고 예쁜 옷을 사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숱한 오해로 인해 눈물짓던 날이 더 많았다. "여자가 똑똑하면 뭐해? 남자 내조를 더 잘해야지!", "며느리가 어떻게 딸이 돼? 며느리는 며느리지." 진솔함을 담은 명언(?)을 마음에 담아두며 거리를 두기도 했다.


결혼하고 난 첫 12월 마지막 날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자랑을 하고 싶으셨는지 새해 첫날, 친척들을 초대하기로 하셨다며 음식 준비를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본인이 징그러워 못 하겠다며 오징어 내장을 따라고 하셨다. 갯마을 차차차에 오징어 내장을 따라고 요구하는 홍반장에게 "오징어 내장을 따라고요? 말도 안 돼.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어."라고 발끈했던 치과의사 혜진이처럼 나도 발끈했다. 다만 속으로만 발끈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며느리지 않는가. 못하겠다 말도 못 한 채, 아무 말 없이 오징어 내장을 생전 처음 따 봤다. 12월 31일, 새해를 맞이하는 전날 밤 나는 오징어 내장을 따며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거리를 두고, 원망하던 마음이 세월이 흐르니 조금씩 누그러들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이를 먹어가니 그랬다.  이제는 오징어 내장도 쓱쓱 잘 딸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던가. 마흔에 접어들면서 시어머니를 나와 같은 한 여자로 만나게 되었다. 그분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44살, 지금의 나랑 얼추 비슷할 나이에 어머니는 남편을 여의었다. 40살, 꽃다운 나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아직 남편의 너른 품에 기댈 수 있었을 그 나이에 남편을 오랜 시간 간호하셨다.


시아버지는 아내를 평생 모시고 다니겠다며 운전도 못 배우게 하셨단다. 실제 어머니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셨을 때도 매번 대학교에 데려다주고,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를 데리러 오셨단다. 심지어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도 말이다. 그런 남편을 일찍이 여의고 얼마나 막막하셨을까? 삶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하지만 어머니는 자녀 3명을 키우기 위해 슬픔은 잠시 묻어두고 '엄마의 삶'을 기꺼이 살아갔다. 남편의 몫이었던 운전을 배우고, 안 하던 일을 시작하였다. 여리여리 소녀 같았던 그녀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오로지 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시어머니가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니 한 여자의 삶이 참 애처롭고도 강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가족이 된 시어머니. 때로는 어렵고 때로는 불편했던 시어머니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여자로 바라보니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남편 없이 고단했을 삶. 홀로 견뎌내야 했을 삶. 어려웠음에도 묵묵히 엄마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녀 3명을 잘 키워낸 삶. 강인한 여자인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존경의 마음이 우러러 나온다. 마흔이 되니 내 마음이 이만큼 자라난 걸까? 나이가 먹으면서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긴 걸까? 어렵기만 했던 시어머니를 이제는 같은 여자로 바라본다. 같은 여자로 그녀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70이 넘어도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 어머니. 체력적으로 조금씩 힘들어져 누워 계시는 시간도 많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활동을 하신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자원봉사 교육도 하시고, 웰다잉(well dying) 교육도 하신다. 사별, 이혼 등 싱글로 자녀를 키우는 여성들을 위한 일도 하신다. 코로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바쁜 며느리 눈치를 보시며 줌(ZOOM) 사용도 물으셨다. 여전히 소녀 같이 해맑은 목소리와 웃음소리로 기분 좋게 전화하시는 어머니께 참 감사하다.


겨울이 되니, 나무의 낙엽이 다 떨어져 추워 보인다.  어쩌면 노년은 계절로 바라보면 '겨울'의 시절일 것이다. 건강과 젊음의 열매와 잎이 다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버린 발가벗은 사람 같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노년'의 세월은 내세우려 했던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리고 진짜 자기(self)만 남은 시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겉으로 보기엔 초라해 보이고 쓸쓸해 보이지만 풍성한 나뭇잎 없이도 굳건히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있는 강인함이 담긴 시절이지 않을까 싶다. 시어머니의 노년 시절을 옆에서 마주하니, 나이가 드는 일이 두려운 일만은 아니겠구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되길 바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