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양자역학

해피엔딩 편의주의자

by 심연천문대

양자역학은 관측 전까지는 중첩상태지만 관측을 하면 결과가 정해진다고 한다.

이런 중첩상태는 인간의 마음이 가진 흐릿함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인간의 마음은 늘 명확하지 않고 흐릿하고 중첩되어 있다.

사랑은 언제나 모순적이다.

내가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지, 외로움이 만들어낸 감정인지조차 알 수 없다.


이런 혼란 속에서 마음은 하나의 명확한 결론 없이 떠다니는 중첩상태에 있다.

그러다 어떠한 계기가 생길 경우 그제야 감정이 확정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갑작스러운 고백을 해왔을 때 그동안 모호했던 감정이 한순간 선명해진다.

또는 예상치 못한 이별을 맞이할 때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이렇듯 감정은 여러 상태로 겹겹이 떠돌다 결정적인 순간에 비로소 실체를 드러낸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처럼 사랑도 확인하기 전까지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는 중첩상태인 것이다.

감정이 고통을 수반할 것 같으면 마음은 일부러 중첩상태로 남겨진다.

이 중첩상태는 단순한 모호함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의도된 애매함이자 마음의 피난처다.

마음을 숨기는 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기제다.

마음을 드러내는 순간, 그 마음은 확정된다.

그게 사랑의 고백이든, 체념이든, 상실이든.


현실을 마주하면 상처가 두려워 도망친다.

상처를 피하려다 결국 슬픔까지 외면한다.

타인보다 스스로에게 마음을 숨기는 일이 가장 편한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에게조차 마음을 숨기는 사람들을 "해피엔딩 편의주의자"라고 이름 붙였다.

갈등과 슬픔을 견디기보다 행복한 결말만을 믿는 쪽이 더 편한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상처받기 싫은 인간의 무기력은 어쩌면 인간의 당연한 본능일지 모른다.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고, 고통을 끝까지 감내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럼에도 그걸 해내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진정한 명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훌륭한 감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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