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와 부속품

감정을 마주하는 법

by 심연천문대

책임지지 않을 감정을 주는 그가 처음엔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힘들다고 말해온 건 바로 나였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그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임지지 않았더라도 내 안에 ‘좋아함’을 일깨워준 그에게 고마워졌다.


그는 항상 많은 감정을 느끼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오래 곱씹으며 간직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그는 나와의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고 오래 간직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 말을 항상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에 쫓기던 나는, 관계의 형태만을 중요하게 여겼다.

어차피 헤어지면 다시는 볼 수 없다.

결국 서로를 잊기에 급급하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감정을 결혼이라는 지속 가능한 틀에 초점을 두었다.

서로의 교감이 사라지기 전에 관계를 확실히 하고 싶었다.

결국 나는 현재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결과 중심으로 감정을 판단하고 있었다.

이런 내 불안과 초조함이 그에게는 얼마나 부담이었을까.


그는 나의 결혼이라는 숙제에 끼워 맞추는 부속품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늦었지만, 그가 무엇을 원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지탱할 지지대를 쌓아야 했다.


그는 감정은 결과가 아니라 경험이라는 걸 알게 해 준 사람이었다.

나는 지지대가 아닌 부속품으로 관계를 붙잡으려 했다.

내게는 지지대가 되어줄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를 부속품으로 착각했고 결국 떠나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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