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극 디렉터의 시선으로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은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이 말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위로가 된다. 많은 것을 기대어 살아가는 기억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왜곡되고 억압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기억하는 건 그래서 온전하지 못하게 된다.
예전에는 옳았다고 생각한 것들이 그러지 못하기도 하다. 완벽하지 못하고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삶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나. 그래서 나는 내일을 다시 살아간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도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어제의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심리극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
심리학에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사람.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가 말했다. 사랑과 일, 이 2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삶은 살만하다고. 나는 심리극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너를 모르지만, 넌 나를 치유해주었어." 누군가가 나에게 온전히 마음을 기울여주는 경험. 그 경험 안에서 마음의 접촉이 있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었다.
심리극을 만나고 내 삶은 달라졌다. 과거에 있었던 상처를 만날 수 있었다. 상처로 둘러싸인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다시 살아갈 수 있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네가 스스로 만든 거야."라고 말하지만 심리극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통증이 없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심리극을 사랑하면서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완전히 치유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오해한다. 상담과 심리치료를 하게 되면 통증이 없는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착각이다. 잘못 알고 있다. 세상에 피로, 고통, 통증, 좌절이 없는 삶은 없다.
일상을 살면서 일어나는 피로감과 통증, 좌절이 있지만 그저 바라볼 뿐이다. 거기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는 이미 경험했다. 어린 시절 상처받은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지금 밥을 많이 먹는다고 한들 30년 전 배고픔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통증만 없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날씨가 흐려도 우리는 우산을 쓰고 그런 날을 즐겨야 했다.
이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나는 요즘 많이 일상이 버겁다. 음식을 많이 먹어서 배부른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다. 학생, 남편, 아버지, 아들, 처가 관계, 가장 등 여러 삶의 역할이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예측하기 어렵다. 괜찮다. 이 또한 삶의 한 부분이다. 삶의 전부가 아니다.
멀리에 있는 첨성대도, 구름, 산을 보기도 하고. 가까이에 있는 핑크뮬리도 본다. 나의 마음의 시선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것이다.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너무 마음이 무거워졌을 때일수록 호흡을 가볍게 돌려야 한다.
사랑하는 심리극이
나에게 준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