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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듕쌤 Aug 22. 2023

그는 어쩌다 30대 노숙인이 되었을까.

삶에 지쳐 멈추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내가 매일같이 오가는 지하철역에는 노숙인이 한분 사신다. 지하철 역에 산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일을 갈 때에도, 집에 올 때에도 마주치니 그곳에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보통 다리라도 하나 절고 아파 보이는 보통의 노숙인들과 달리 그분은 젊고, 아픈 데 없이 건강해 보인다.


매일같이 마주치다 보니 생각이 흐르고 흘러 이유가 궁금해지기에 이르렀다.


"저분은 어쩌다가 젊고 건강한 노숙인이 되었을까?"


분명 저 사람에게도 희망에 가득 찬 어린 시절이 있었을 텐데. 하루에 500번 웃는다는 다른 어린이들처럼 웃음이 있었을 텐데.


그에게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고 싶지만 그럴 용기는 없어서 대답을 상상해 보기로 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그래도 꽤 알아주는 부잣집이었어.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말이지. 그런데 아버지가 IMF때 그냥 폭삭 망하고 만 거야. 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남은 어머니랑 나 둘이서 살아야 했지. 엄마는 술을 파는 곳에서 밤일을 하셨는데 집에 가끔 남자들도 데리고 왔었어. 하지만 같은 사람을 두 번 이상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 매번 보는 사람이 바뀌었거든. 나는 그 사람들이 나갈 때 일부러 문 앞에 앉아있었어. 그럼 그들은 어김없이 만원씩 주고 갔어. 그럼 난 그걸로 오락도 하고 밥도 사 먹는 거야. 근데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 짓도 못해먹겠더라고. 엄마가 뭘 하는지 알아버렸거든. 그래서 집을 나왔어. 갈 데가 없어서 길거리에도 살다가 청소년 보호센터에도 들어갔다가 이러다 맞아 죽을 것 같아서 나와서 막노동판에 들어갔지. 사무실에서 잘 수 있게 해 줬거든. 그러다 아는 사람이 하는 클럽에 매니저로 들어가서 큰돈을 벌었어. 정말 정말 큰돈이었어. 그러다 신고가 들어와서 감옥에 들어가고 나와보니 내 돈은 이미 그들이 다 가져간 뒤였지.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길에서 살기 시작한 거야.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난 할 수 있는 건 다 했거든.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제자리야. 그래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


아마도 부유했던 과거와 가난했던 과거를 모두 안고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 한 순간 허무하게 실패해 열심히 살 의지가 한순간에 꺾여버렸겠지.


그런 사람을 다시 열심히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다 이내 나의 고민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다시 예전처럼 열심히 살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인시절 내내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돈 욕심이 그닥 없어서 덜 벌고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회사를 나왔지만 결혼하기 전까지도 여전히 열심히 살았다. 나이 먹고 결혼도 안 했으니 더 가꾸고 멋있는 사람으로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압박에서였다.


그리고 그 모든 의지는 결혼 후 한 번에 꺾여버렸다.


광고가 꾸준히 들어오던 인스타를 그만두었고, 7년간 해왔던 클라이밍을 거의 그만두다시피 했다. 등산도 하지 않았으며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충분해. 행복해."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 삶이 너무도 무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늘 자기 할 일로 바쁜 신랑에게 놀아달라 징징거릴 수는 없었다.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그래서 글도 쓰고 친구들도 만나기 시작했다. 그만두었던 클라이밍도 조금씩 다시 하고 요가도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숙인을 매일같이 마주치며 내 마음도 어딘가가 고장이 나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힘들었던 내 과거를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 아닐까? 이렇게 여유롭게 지냄으로써 위로를 받고 있는 걸까? 정말 이대로 멈춰있어도 괜찮은 건가?'


나 스스로가 너무 게으른 것 같아 견딜 수 없을 때 남편은 괜찮다고 다독여줬다.


"쉬고 싶으면 쉬어도 돼. 그러다 다시 움직일 힘이 생기면 그때부터 다시 하면 돼."



누구에나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 견딜 수 없는 시기가 있으리라. 그럼 잠시 마음 놓고 쉬어보자. 언젠가 분명히 아무렇지 않게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날이 온다. 그때는 주저 않고 일어나 달려야 한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힘을 내 다시 뛰어야 한다.


"조금 커다란 걸 잃었어.
하지만 아직 내게는 남아있는 게 있을 거야.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 애니메이션 무직전생 시즌2 中 -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노숙인에게 남은 게 있다고 말해주기는 힘들 거다. 그러나 그에겐 건강한 신체가 남아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건강한 신체 하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싶어도 분명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다. 무너진 마음만 살릴 수 있다면 다시 사람처럼 따뜻한 집에 살 수 있는 날이 올 거다.



그에게 깨끗한 옷 한 벌을 건네고 싶다.

깨끗한 옷을 입고 세상에 한 발짝 나아갈 힘을 얻길 바라본다.

멈춰버린 당신의 마음에도 봄바람이 불길 바라본다.



니체는 욕망이 가라앉아 끝도 목적도 싫증도 욕구도 없는, 마치 호수의 물결같은 휴식 시간이 찾아온다면
이런 짧은 즐거움 뒤에 찾아온 권태는 얼어붙은 삶의 의지를 녹일 봄바람이라고 말한다.
- 장재형 [마흔에 읽는 니체]中 -



*메인 사진: 꽃거지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중국의 젊은 노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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