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듕쌤 Jun 22. 2023

행복은 쟁취할 수 있는 것인가?

신랑과 차에서 노래를 듣던 도중 어떤 가사가 나왔다.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행복이 무슨 열매도 아니고 얻어낼 수 있는 거야?"

라는 신랑의 질문에

"응. 하나씩 해나가면 얻을 수 있지."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신랑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야. 행복은 그렇게 얻어내는 게 아니야."


신랑이 생각하는 행복은 아마도 미래에, 눈을 감으려 할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행복은 '지금 당장 내 손에 얻을 수 있는 마음의 평화'였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글쎄, 행복이 뭔지 모르는 삶을 살았다고 해야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고 사는 걸까?'


금전적으로 충분치 않던 대학 시절엔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돈이 있다면,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있은 돈이 있다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원하는 걸 모두 얻을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때에도 난 행복하지 않았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연봉 4~5천만 원을 받는데도 행복하지 않으면, 대체 뭘 가져야 행복할 수 있는 거지?


앞으로 해야 할지 모르던 대학 시절에도, 눈앞의 월급을 향해 살던 직장인 시절에도 ' 해야 행복할까'를 항상 고민해 왔었다.



대체 뭘 해야 행복한 거야?



대학 시절엔 공부도 해야 하고 알바도 해야 해서 하고 싶은 대로 살 여유 따윈 없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며 뭐든 해봤다.


비싼 가방도 사보고, 자전거를 사서 여행도 다녀보고, 해외여행도 가고 오토바이를 타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난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준은 못되었다.


"이만하면 잘 사는 거지. 그냥 다 이렇게 사는 거지."


하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을 통해, 나의 삶이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행복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직장을 그만두었고,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사람들을 멀리했다. 인스타를 열심히 하며 인플루언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도 받아봤다.


모두에게 이런 방식이 정답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한텐 행복에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아, 나는 돈이 조금 없어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 행복하구나."


하지만 늘 뭔가 하나가 부족했다.


바로 평생의 동반자.


결핍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


만남과 헤어짐이 계속되는 삶은 안정될 수가 없었다. 지금의 안정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선 끊임없이 나를 갈고닦아야만 했다. 언제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최상의 상품가치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 때문일까, 정말 열심히 살았고 철저한 자기 관리 하에 살았다. 결핍은 열심히 살아야 하는 동기를 부여했고 나는 그 목적에 충실하게 살았다.


대체로 사람들은 가진 게 정말 없을 때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걸 가진 사람 또한 비슷하게, 때론 더 많이 불행하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던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모든 걸 가진 듯 행복해 보이던 이모가 알코올중독 남편을 두어 평생 바삐 살아야만 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부러워하는 모습.


그 책을 읽으며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부유한 것이 행복의 동의어는 아니야.'



언제까지 열심히 살아야 해?


정말 오랜 시간, 아주 열심히 살았다.


수년간(6~7년 정도) 체지방율 17% 정도를 유지했고 (여자가 이 정도면 2-3주 운동 후 바로 대회 나가도 될 정도의 체지방 수준이다.) 매주 최소 10시간 이상의 운동을 했다.(많이 할 때엔 주에 15시간 이상도 했다.)


그 결과로 얻어진 나의 건강미 넘치는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을 한건지도 모르겠다.


클라이밍 7년차즈음 나의 모습


그러나 정말 쉽지 않은 길이었다.


"행복해, 즐거워.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극한의 노력을 평생하고 살 수는 없다. 사람은 언젠가 그 끈을 놓는 순간이 오는데 내 경우엔 '결혼'이 기점이 되었던 것 같다.


마침 결혼을 하고 발목 부상을 입어 한참 쉬었고, 감기에 걸려 한 달 이상을 앓았다.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지며 운동을 점점 손에서 놓게 되었지만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은 없었다. 집안에만 있으면 안 될 것만 같던 예전과는 달리 마음이 참 편안했다.


17% 정도를 유지하던 체지방율이 19%, 20%로 빠르게 올라왔고 몸풀기 없이도 턱걸이 7-8개 하던 것도 점점 3개, 그리고 1개까지 내려왔다.


점점 평범한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원래 가만히 있는 걸 좋아했던 사람처럼 일 외엔 아무 데도 가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또한 내게는 행복이었다.



외로움, 불안감, 우울함.


내가 아주 오랜 시간 갖고 살던 것들이었다.

나의 경우 외로움이 생길 때마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났다. 혼자 있지 않으면 우울한 생각은 잠시 접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결국 제자리.


"대체 나는 언제까지 열심히 살아야 할까?"


부족한 나의 자아를 인스타그램의 좋아요가 채워주는 것만 같아 그곳에 매달렸다. 사람들이 내 사진에 열광할 때마다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집착했고,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하지만 인플루언서를 유지하는 일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계속해서 퀄리티 높은 게시물을 발행해야 한다는 압박감. 광고주의 눈에 들어 일을 따내야 한다는 강박감. 좋아요가 줄어들 때에 느끼는 불안감.



그 강박은 지금의 신랑을 만나면서 점차 사라졌다.


내 남편은 정말 신기할 만큼 나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비슷한 사람이었다.


"돈에 얽매이는 삶을 살면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어요.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지금 저는 정말 자유로워요."


예전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지만 연애 2년, 결혼생활 1년이 지난 지금 나도 정말 무서울 만큼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에 스스로가 놀랐다.


지금은 타인에게 좋아 보이는 삶이 아닌 오로지 나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의 난 요리하는 게 즐겁고, 글을 쓰는 게 즐겁고, 그러다가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는 게 좋다.


내 건강을 위한 정도의 운동만 하며 내세울 몸이 없으니 사진을 찍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강박과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어야 한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열심히 살지 않아도 잘 살고 있다고.



성공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겐 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냐며 손가락질 당할 수 있겠지만 성공을 이루려다 내 몸과 마음이 모두 타들어가 재가 되는 것보다는 만족하며 편하게 사는 게 훨씬 낫다.


하지만 게으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소비만 하는 삶엔 미래가 없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도 반드시 '생산'을 해야 한다. 생산적이지 않은 인간은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게 되고 그건 자신에 대해서도 똑같기 때문.



행복하고 싶다면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그런 자신을 받아들여라.

소비만 하는 자세는 절대 안 된다.

무언가를 생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글, 요리, 집안일, 뭐든 상관없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면서 끊임없이 기록하고 흔적을 남기다 보면 좋아하는 것을 잘하면서 돈도 버는 만족스러운 자신의 모습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이 가치가 되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은 행복이 된다. 평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성공이 아닐까?




이전 10화 땡전 한 푼 없는 남자와 결혼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