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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생, 하루아침에 우등생이 되다.

2화.

by 민듕쌤

[1화: 연세대 나와서 필라테스 강사 하는데요?]


강남 8 학군과 외고를 나온 친구들로 가득했던 학교. 원어민 수업에서 첫 번째 창피를 당하고 토익 850점을 받고 두 번째 창피를 당했다. 열등감에 몸부림치며 결국 휴학을 결정. 학교에서 뒤처지기만 했던 나의 세상은 휴학 후 180도 변하게 되는데...


휴학을 하고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한 뒤, 나는 오로지 '회화'를 배우는 곳을 찾아 나섰다.


더 이상 영어 시간에 벙어리가 되고 싶지 않았고 공부를 하다 보면 토익점수는 자연스레 오르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강남역에 위치한 정철어학원을 찾았다. 오로지 회화만을 위한 학원. 대화를 위한 문장을 아예 만들 줄 모르던 난 '문장 만들기 기초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를 벗어나 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니 내 주변 환경은 180도 변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만 있던 집단에서 빠져나와 보통의 사람들이 있는 보통의 그룹에 속하게 된 것. 학교 안에서의 난 늘 열등생이었고 가난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학원에 가니 모두가 나처럼 영어를 잘 못했고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넘치지 않았다.


"MJ, 영어 왜 이렇게 잘해?"

한 달 정도 지나자 문장을 만드는 기초를 모두 익혔고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못하던 내 말문이 트였다. 영어 최약체에 속하던 내가 영어를 잘한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으쓱하고 만족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학교 애들은 다 나보다 잘할 텐데.'

그런 생각으로 외국인 강사들이 있는 'English zone'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학기 내내 오로지 영어만 듣고, 영어로만 말하고, 영어로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다음학기, 다시 토익시험을 본 결과 850점이었던 내 점수는 965점으로 껑충 뛰었다.


어떻게 한 학기만에 이렇게 점수가 뛸 수 있나 싶을 수 있겠지만 거의 4-5달 동안 외부 친구들은 거의 만나지 않고 영어만 사용하고 나니 한국에 살면서도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 것처럼 내 언어 세팅은 완벽하게 영어로 전환되어 있었다. 마침 그날이 삼성 SSAT (삼성에 들어가기 위한 적성검사) 시험이 있던 날이라 모두가 그 시험을 보러 가서 그런 것이라는 이유도 한몫했겠지만 어찌 됐건 내세울 것 없던 나에게도 영어라는 무기가 생긴 것이다.



1차 목표를 이루자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목표가 없으니 졸업 후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내에서 해볼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보고 싶었다.


연세대학교는 다른 학교와 비교해 봐도 엄청난 수의 교환학생 자리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연세대를 나온 여자치고 교환학생을 다녀오지 않으면 억울하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였다.


왜 여자치고냐 하면 교환학생은 대개 학교성적과 영어점수로 등수를 세워 합격자를 가린다. 대체로 여학생들이 성적 관리를 철저히 하기도 했지만 성적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영어점수. 남자들이 언어적 측면에서 여자를 따라올 수 없었기 때문에 합격자 중에는 여학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


나도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한 외국 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교환학생을 지원해 보기로 했다.



교환학생 준비를 핑계로 또 한 번의 휴학을 하게 되었다. 학교공부와 토플공부를 함께 해낼 자신이 없기도 했고 공부에 드는 돈을 마련하려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일을 하며 스스로 용돈을 마련하며 학교를 다닌다는 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같이 모여 놀러 다닐 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민정이 진짜 대단해. 맨날 일도 다니면서 학교 행사에도 안 빠지잖아."


당시 난 동기의 이 대단하다는 한마디가 너무 듣기 싫었다. 나도 그들처럼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 받으며 학교생활에만 전념하고 싶었다. 부모님이 주시는 돈으로 방학마다 유럽여행도 가고 싶었다. 부모님이 나가서 일하라고 등 떠밀지는 않았어도 원해서 선택한 일은 아니었다. 그의 대단하다는 말이 마치 '민정이는 안 됐다. 일해야 돼서.'라는 말로 들렸다.


우리 집은 그들처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대학 입학금은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손 벌려야 했지만 그 이후론 모든 걸 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하랴 학교 다니랴 바둥거렸고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다.



휴학은 힘든 삶에서 한숨 쉬어갈 수 있는 오아시스와 같았다. 아마 이때부터였을까? 너무 힘든 일엔 굳이 매달리지 않고 과감하게 놓고 쉬어가는 습관이 생긴 건.



교환학생 준비를 핑계로 두 번째 휴학을 하게 되었다.


토플 공부는 토익 공부와는 차원이 달랐다. 한 번에 3~4만 원 정도면 시험을 볼 수 있는 토익과는 달리 토플은 한 번 시험에 300달러, 거의 40만 원이라는 비용이 드는 비싼 시험이었다.(당시 환율은 1300원이 넘을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딱 한 번에 점수를 따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죽어라고 공부했다.


교환학생에 합격하기 위해선 토플 점수가 최소 100점은 되어야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102점 이상이면 안정권이라고. 120점 만점의 시험에서 100점 맞는 게 뭐 그리 어렵겠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유학생들이 와서 시험을 쳐도 100점이 넘기 어려운 상당한 난이도였다.


그냥 영어 실력만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닌 사고의 폭, 문해력, 설득력 등을 종합적으로 테스트하는 말하기+쓰기+듣기+읽기 4가지를 다 보면 3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는 종합 언어능력 평가에 가까웠다.


나는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해커스 3개월 코스에 몰아넣고 학원-집-과외만 반복하는 생활 끝에 시험을 보게 되었다.


결과는 98점.


나쁘지 않은 점수였지만 교환학생에 합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애매한 점수였다.


학교성적 또한 2학년 때 일부 회복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좋은 성적은 아니었기에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1학년때부터 성적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문과대 학생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성적이었다.


'그래도 힘들게본 시험이니 일단 되는대로 지원해 보자.'



1 지망부터 20 지망까지 총 스무 개의 학교를 고를 수 있고, 어떤 학교는 2학기 과정, 어떤 학교는 1학기 과정으로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모두가 '한 번 갈 거면 당연히 2학기는 다녀와야지'라는 생각이었고 나 또한 그랬기에 2학기 짜리 학교를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2학기 대학교 19군데를 선택하자 더 이상 영어권 국가에 쓸만한 학교가 보이지 않아 마지막은 1학기 과정인 학교를 대충 골라 끼워 넣었다.


"이 중에 뭐라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결과 발표날이 되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떨렸다. 이게 뭐라고..


1 지망부터 쭈욱 결과가 보였다.

1 지망 - 탈락

2 지망 - 탈락

3 지망 - 탈락 ....


그렇게 스크롤을 쭈욱 내려갔지만 결과는 모두 탈락...


역시 안 됐구나 하는 처참한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스크롤을 당겨 내렸는데


20 지망 - 합격.


마지막으로 그냥 넣어두었던 이름 모를 한 학기짜리 학교에 겨우 합격을 했다.


이쯤 되면 한 학기 짜리는 아무도 지원을 안 해서가 아닌가 싶었지만 어찌 됐건 하나 합격하기는 했다는 것에 뛸 듯이 기뻤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늘은 늘 내게 좋은 방향으로 모든 선택을 도와주는 것 같다. 덜컥 2학기 짜리 학교에 합격했더라면 정말 끔찍했을 것 같은데, 어찌 알고 딱 1학기 짜리 과정에 합격을 시켜준 건지.
나는 이제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이 또한 다 하늘의 뜻이 있음이다'라고 생각하며 좋은 기회가 오기를 차분히 기다린다.


그러나 이내 내 머릿속에선 돈계산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 학기 학비는 연세대에 내고, 생활비랑 기숙사비에 비행기값까지 하면....


대체 얼마가 들지 예상할 수도 없었다. 어찌 됐건 합격증을 받았으니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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