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얼마가 들지 모르지만 비행기값과 기숙사비만 생각해도 수백만 원이 넘어갈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아무런 일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또 보며 기업에서 인턴처럼 일을 할 수도 있으면서 돈을 많이 주는 곳을 골랐다.
그중 한 곳이 눈에 띄었다.
'일당 10만 원, 출장 시 출장비 별도'
일당이 10만 원이라니. 일단 평일을 다 나간다고 치면 월 200만 원은 당연히 넘어갔고 출장비도 받고 주말 출근까지 하면 300만 원 가까이 벌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게다가 근무 기간은 2개월~3개월. 프로젝트가 있는 동안만 하면 되는데 한 학기 빡세게 벌고 캐나다에 갈 준비를 해야 하는 내겐 최적의 조건이었다.
꼭 뽑히고 싶었다.
면접을 가보니 한국생산성본부라는 공공기관이었고, 한국에서 교육을 받을 인도네시아 고위 공무원을 인솔하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모든 일정을 어레인지하는 '코디네이터' 일이었다.
"우리가 대충 이런 일을 하는데, 하나 중요한 게. 주말에 그 사람들이 올 때 한 번씩 새벽에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나는 새벽이고 지방이고 따질 여유가 없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면접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 사실 우리는 남자를 뽑고 싶었는데 그 사람은 새벽에 공항 가는 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그렇게 해줄 사람이 꼭 필요해서. 알았어요. 결과는 내일까지 연락드리겠습니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당장 나한테 몇백만 원을 쥐어준다면 난 꼭 하고 싶었다. 해야만 했다.
당시의 최저시급은 4110원. 하루 10시간을 일해도 일당은 4만 원 남짓이었고 과외로 수백만 원을 벌 재간도 없었기 때문에 이게 안된다면 고강도 노동으로 유명하지만 일당이 가장 세다는 호텔 뷔페 알바라도 하려던 차였다.
그리고 다음 날,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합격하셨어요. 다음 주부터 나오셔서 대략적인 일정도 보고 준비과정을 좀 봐주세요."
'이제 꽃길만 걸으면 되는 건가?'
들뜬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당시의 난 인도네시아라는 국가가 있는지도 몰랐고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인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지금이야 동남아시아의 위상이 높아지고 여행도 많이 가지만 그 당시엔 태국 외의 동남아 국가는 있는지도 모르는 곳들 투성이었다.
당연히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도 처음 들었던 난 인도랑 같은 나라라고 생각해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여기 힌두교 아니에요..?"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국가입니다. 일단 그 공부부터 해야겠네."
거의 전 국민이 무슬림을 믿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인도네시아 인들은 돼지고기를 전혀 먹지 않고 정해진 시간마다 기도를 해야 했다. 호텔을 잡을 때마다 어디가 동쪽인지도 미리 알아놔야 했고 기도시간엔 일정을 잡으면 안 됐다.
시간은 새벽 4시 반. 집에서 3시에 출발했고 대략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다. 너무 피곤했지만 처음이라 할만했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6시가 다되어 도착한 그들을 인솔해 회사로 데려왔다.
이제 한숨 돌리려나 싶었지만 휴식은커녕 그때부터 지옥의 스케줄이 시작되었다.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밥집을 예약하고, 오후 일정에 필요한 준비물과 강연자를 다시 체크하고, 저녁 식당을 예약하고, 호텔 예약내역을 확인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20일간 꼬박 그들과 생활했다. 아침 8시 출근, 저녁 8~9시 퇴근.그러는 사이 새벽 공항 마중도 3번이나 나가면서 체력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시급으로 치면 일당 10만 원이 보잘것없어 보일 정도의 업무강도였다. 하지만 4110원보다는 낫지 않은가?내게는그 돈이 꼭 필요했기에주어진 업무를 끝까지 해내야만 했다.
또 다른 위기
그들 중 몇몇은 나를 "MJ yang~"이라고 불렀는데 yang이란 "honey/babe"와 같은 뜻. 우리말로 치면 "민정 자기야~"쯤 되려나?
나이도 지긋하고 결혼도 한 아저씨들이니 그냥 그러려니 넘겼다. 하지만 이를 본 내 상사가 물었다.
"너 저게 무슨 뜻인지 알아?"
"Honey 라면서요. 그냥 친근하게 부르는 거잖아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는 말씀. 저건 널 부인 삼고 싶다는 뜻이야."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이미 다 결혼 한 사람들이잖아요~"
말도 안 되는 농담이라 생각하고 무심히 대답했다.
"인도네시아는 일부다처제야. 저 정도 능력 있는 고위 공무원들이면 부인 둘은 충분히 가질 수 있어."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그들이 성적으로 선을 넘은 적은 없었지만 내 손을 꼬옥 잡고 내 눈을 한참동안 뚫어져라 바라보던 한 참가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카르타에 있는 자기 집에 꼭 오라며 주소를 알려주던 참가자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했다.
예전, 개그우먼 박선영이 사우디 왕자에게 들었던 청혼 일화가 떠올랐다. "Would you be my THIRD wife?"(떨드 와이프라고 강조해서 발음하였다) 나는 그들의 Second wife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만약 이때 상사에게서 인도네시아의 일부다처제에 대해서 듣지 못한채 진짜로 자카르타에 있는 그들의 집을 방문하고 청혼을 받았을지 누가 알겠는가.
"MJ! Will you be my second wife??"
상상만 해도 황당하다. 두번째 와이프라니.
돼지고기 절대 넣지 말아주세요.
무슬림이나 채식에 대한 인지가 전혀 없던 2009년의 대한민국과 내가 사고를 치게 된 날도 있었다.
"돼지고기 절대 넣지 말아 주세요."
식당 예약을 위해 전화를 할 때마다 하는 말이었고 소고기가 들어가는 샤부샤부 칼국수를 먹는 날이니큰 걱정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MJ, what's this?"
그 사람이 물어본 것은 바로 '만두'였다.
돼지고기를 넣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식당 직원이 만두에 돼지고기가 들어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것.
나는 바로 "Don't eat this. It has a pork!"라고 하고 만두를 빼내기 시작했지만 전 인원 중 절반이 그 즉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당황하며 다른 메뉴를 시켜주고 잘 지나간 줄 알았지만 나를 고용했던 담당자에게 컴플레인이 들어갔다.
"우리는 돼지고기 자체도 먹지 않지만 돼지고기가 들어간 요리는 국물도 먹지 않습니다. 종교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부족한 것 같군요."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핑계를 대고 싶어도 결국은 내 잘못이 맞았다. "만두, 소시지도 안됩니다!"라고 식당에 정확히 전달을 해야 했고 만두가 들어간 걸 안 순간 식당에 컴플레인을 걸어 강력하게 대처를 해야 했던 것.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의 잘못이었다.
그들에게 돼지고기란 그런 것이었다.
입 안으로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
일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먹기도 했으나 무슬림에 대한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돼지고기 국물만 써도 요리에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그 후로 만두 공포증(?)처럼 식당에 전화를 걸 때마다 "만두도 안 돼요. 돼지고기 절대 넣으시면 안 돼요"라고 여러 번 반복해서 전달했다.
그 외에도 교육이 없는 날엔 그들을 데리고 관광을 시키고 쇼핑도 데려가는 등 거의 두 달 넘도록 정신없이 일만 했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끝나고 벌어들인 돈은 500만 원 정도. 국내 학비는 당시 받고 있던 외부장학금으로 충당하고 비행기값이랑 기숙사비(한국 기준으로 월 70만 원, 식대 15만 원) 등을 계산하니 얼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