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듕쌤 Jul 13. 2023

다리가 굵어야 미인이라고?

4화. 운동의 세계에 발을 들이다.

교환학생 생활에 필요한 고지서가 캐나다에서 날아왔다.


기숙사비(3.5개월)

식비 (밀플랜 선택 가능)


캐나다의 학교에 지불해야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당시 연세대학교(신촌기준) 기숙사비는 한 달에 70만 원, 식비는 월 10만 원 정도라고 알고 있었다. 식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두 가지 모두를 합쳐도 한 학기에 300만 원 안에서 해결이 되는 것.


당시 캐나다 왕복 비행기값은 120만 원 정도로 모두 내 예산 범위 내였다.


그러나 내가 받은 고지서는


기숙사비 350만 원(학기 중에만 머물 수 있음)

식비 (무제한-120만 원, 1일 2회-90만 원, 1일 1회-60만 원)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 가지를 합쳐서 고작 3개월 반이라는 시간 동안 450만 원 정도를 내야 했다.


(지금 검색해 보니 한 학기 숙소비용만 CAD4,880/ 식대 일 2회 CAD2,660 별도, 토탈 750만원 정도로 가격이 훨씬 많이 올랐다.)


내가 사용했던 기숙사 방. 학교측에서 배정해준 방이었는데 가장 최근에 지어 비싸고 깨끗한 이 곳만 남아있었다.


내가 가진 돈은 500만 원이 채 안되는데.. 비행기값에, 학교에 들어가기 전 일주일 정도 머물 숙소비와 학기 중 생활비 등을 계산하면 택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께 손을 벌렸다.


이래저래 해서 돈이 좀 부족하다고.. 당시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던 어머니는 이런 상황을 이모와 공유했고 어머니는 100만 원, 이모는 비행기값을 지원해 주어 겨우 캐나다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두 학기 동안 교환학생을 가면 그 사이 여름방학 동안 그 나라를 쫙 여행하고 들어온다. 나도 조금은 여행을 하고 들어오자는 마음으로 시간적 여유를 두고 돌아오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하지만 나 홀로 외국생활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모든 자유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있던 처음과 달리 갈수록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이지만 친구들이 많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건 나에 대한 오산이었고 자만이었다.



캐나다에는 딱 4개월 동안 있었다. 첫 한 달은 넘쳐나는 파티가 즐거웠고, 새로운 식사가 입에 잘 맞아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 빼고 모두가 알아서 잘 사는 것만 같았다. 그 안에서 남자친구도 척척 만들어 그들끼리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시험기간엔 각자 공부를 하느라 만나지도 못하니 혼자 있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캐나다의 겨울은 또 얼마나 춥던가. 당연히 이불이 제공되는 줄 알았으나 기숙사 방엔 이불이 없었다. 기숙사 측에서 남는 모포(?) 같은 담요를 두 개 정도 줬는데 히터를 아무리 세게 틀어도 따뜻하지가 않았다. 이불을 사려고 시내 쇼핑몰에도 몇 번을 갔지만 잠깐 쓰고 버리고 올 이불에 십만 원 가까운 돈을 쓰기가 너무 아까워 번번이 구매를 포기하고 돌아왔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벌벌 떨어야 하는 잠자리는 견디기 어려워 친구의 방에서 자고 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까짓 거 뭐라고, 그 몇만 원을 이불 사는데 못 썼을까 싶지만 늘 재정적으로 허덕이던 대학시절의 난 돈 들어올 구석 하나 없는 타지에서 지출을 극도로 제한했던 것 같다. 정말 다행인 건 기숙사 식당이 뷔페식이라 그나마 배 안 곯고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식은 왜 그렇게 먹고 싶은지. 고작 몇 달 못 먹은 한식을 먹기 위해 시내 식당에 나갔다가 코딱지만 한 양을 주면서 기함할만한 음식 가격을 받는 것을 보고 다시는 외식을 하지 않았다.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교환학생 친구들 무리와 어울려 다니며 파티와 클럽을 다니는 등 밤문화도 경험했지만 축구, 러닝 등 운동을 즐겨하는 친구들을 따라 운동도 시작했다.


등학교 때부터 타고난 운동신경이 있기는 했으나 태권도나 조금 다니고 따로 뭘 하지 않아도 그냥 깡다구로 체력장 1등급을 따오는 정도였지 꾸준히 운동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지각해서 학교를 뛰어올라가던 것을 제외하면 딱히 운동이란 걸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난생처음 헬스장에 가서 몸을 쓰는 것도 기분 좋았고,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것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친하던 친구가 달리기를 한다기에 무작정 따라나섰다.


인생 첫 장거리 달리기


학교 체육관 2층에는 트랙처럼 한 방향으로 돌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3km를 뛴다고 했다.


장거리 달리기라고는 학교에서 체력장으로 1.2km 정도 뛰어본 게 다인 나는 "힉? 그렇게나 많이?" 하며 놀랐지만 그 친구는 "이 정도는 몸풀기일 뿐인데?" 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실제로 달려보니 1등을 하겠다고 죽어라고 달리던 1.2km 달리기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허벅지 안쪽의 근육들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좁은 실내 공간이라 트랙을 거의 10바퀴 가까이 뛰어야 3킬로를 채울 수 있었는데 5바퀴부터 이미 다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무릎은 굽어지고 골반은 씰룩거렸지만 걷고 싶지는 않았다. 아주 천천히라도 끝까지 뛰어서 완주하고 싶었다. 다리를 질질 끌듯 8바퀴 정도 뛰고 나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내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것 같았는데 다리는 저절로 움직였다. 너무 힘들고 숨도 턱까지 차오르고, 열기에 눈앞이 하얘졌지만 오히려 속도는 처음보다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바퀴. 온몸이 풀려있는 상태에서 전력질주를 했다. 다리를 쭉 쭉 찢어 넓은 보폭으로 골인 지점을 향해 나갔다.


신기했다. 눈물이 차오를 것 같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가슴이 울컥하는데도 몸은 너무도 가벼웠다. 다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알아서 움직였고 힘듦보다 쾌감이 앞섰다. 그간의 슬픔과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씻어 날려 보내는 것 같았다. 난생처음으로 느껴본 신기한 감정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런 걸 러너스하이(runner's high)라고 한다더라. 이때 당시엔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운동의 세계에 빠져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러너스하이: 30분 이상 뛰었을 때 밀려오는 행복감. 헤로인이나 모르핀을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의식 상태나 행복감과 비슷하다. 다리와 팔이 가벼워지고 리듬감이 생기며 피로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힘이 생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High란 마약이나 약 등에 취해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인데, 달리면서 느끼는 약에 취한 느낌이라 하여 러너스 하이라는 말을 쓴다. 술에 취한 상태에는 high가 아닌 drunk를 쓴다.


운동이 끝난 뒤 멕시코에서 온 그 친구(여자)의 방에 놀러 갔다.

"그동안 다리가 두꺼워질까 봐 뛰는 게 싫었는데 오늘 뛰어보니 너무 좋았어. 덕분에 좋은 운동을 찾게돼서 너무 고마워."

그러자 멕시코친구는

"Oh MJ! You got the sexy legs!"라고 하며 자기네 나라에선 근육이 많은 여자가 섹시한 거라고, 종아리가 탄탄한 내 다리는 멕시코에서 인기 있는 다리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10년 전의 한국에선 근육질의 여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모두가 '얇은 다리'만을 바랐기 때문에 근육질에 두꺼운 내 다리는 늘 콤플렉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다리가 다른 나라에선 미의 기준이 될 수 있다니.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나는 탄탄한 몸매에 대한 이상을 조금씩 갖기 시작했다.



이런 긍정적 효과도 분명 있었지만 외로움은 누구도 달래줄 수 없었다. 매일밤 울며 그림도 그리고, 운동도 하고, 뜨개질도 하며 견뎌냈다.


"나 시험 끝나고 바로 한국에 돌아가려구."


끝나고 함께 여행을 하자던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시험이 끝난 바로 다음 날, 비행기 일정을 앞당겨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의 스포츠 인생 1막이 시작될 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내게 맞는 직업은 '운동' 직종이라는  걸.



다음 편에 계속.


늘 정말 많은 친구들 틈에서 지냈지만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어쩐지 내 표정도 조금 슬퍼보이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