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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잎부터 인플루언서

5화. 나이키 대학생 모델에 발탁되다.

by 민듕쌤

한국에 와서도 나의 달리기 사랑은 계속됐다.


내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 게 특이한 일일 정도로 운동은 오로지 남자들과 소수 여자들의 전유물인 시대였다.


지금이야 레깅스만 입고 엉덩이를 당당하게 내놓고 거리를 활보하는 운동녀들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당시엔 레깅스가 갓 나오기 시작한 때라 레깅스 위에 반바지를 입는 게 당연했다.


웃지 못할 일화가 있는데, 캐나다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캐나다에서 입던 레깅스 위에 '나름'긴 상의를 입어 엉덩이를 살짝 가리고 아버지와 식당에 갔다. 근데 나를 보는 시선들이 심상치 않은 것 아니겠는가? 뭐가 잘못된지도 모른 채 '옷이 뭐가 이상한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물을 뜨러 가거나 화장실을 다녀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일제히 내게 쏠리는 시선은 아무리 봐도 너무 이상했다. 같이 식당에 갔던 아버지가 "무슨 치마가 엉덩이가 다 보여? 대체 그게 옷을 입은 거냐 만 거냐?" 화를 내시자 그제야 뭐가 잘못됐는지 깨달았다. 캐나다에서 매일 일상처럼 입고 다니던 레깅스가 한국에서는 바지가 아님을 알고 어찌나 충격을 받았던지.. 당시 입고 있던 옷과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떠오를 정도로 레깅스는 운동복이라기보다 내의에 가까운 시절이었다.


지난 4화, [다리가 굵어야 미인이라고?]에서처럼 한국에서는 운동으로 다져진 미인이라는 개념이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할 때였고 여자란 자고로 얇고 긴 다리를 가져야 미인이라는 인식이 보통이었다.


나는 태생이 근육이 잘 생기는 몸이었는지 종아리가 육상선수만큼 굵고 허벅지는 스케이트 선수만큼 굵어서 종종 '쇼트트랙 선수'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 얘기를 듣는 게 너무 싫어 꼼짝 않고 누워만 있어도 봤고 압박스타킹을 신어도 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종아리가 탄탄하면서 몸도 전체적으로 밸런스 있게 발달했다면 그러려니 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상체빈약(XS사이즈), 하체비만(M사이즈)의 완벽한 '하비'였기 때문에 튼실한 다리는 늘 나의 콤플렉스였고 가리고 다니기에 급급했지 운동으로 다져볼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내가 '근수저'인 것에 감사하다. 조금만 운동을 해도 근육이 남자처럼 뿜어져 나오는 축복받은 몸이었을지 누가 알았으랴. 콤플렉스였던 엉덩이는 운동 후 오히려 장점이 되었지만 당시엔 아무것도 안 해도 근육이 터져 나오던 종아리가 그렇게도 창피할 수 없었다.


과거의 나. 늘 A라인 스커트로 하체를 가리거나 긴 티셔츠로 뚱뚱하고 푹퍼진 엉덩이를 가리고 다녔다.


당시 내가 만나던 남자친구는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지만 한국에서 군대까지 나온 반 교포였다. 그 친구에게 캐나다에서 했던 신기한 경험을 말해줬다.


"나 있잖아 캐나다에서 달리기를 해봤는데! 막 엄청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기분이 이상하게 되게 좋았다?? 근데 다리가 굵어질 것 같아서 또 뛸까 말까 고민돼.."


16살까지 미국에서 살았던 그 친구는


"운동하면 너무 좋지! 몸매가 더 좋아질걸? 미국에서도 근육 있는 여자들을 더 좋아해~"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동안 내가 치마 입고 하이힐 신고 다니면


"다리 알이 너무 큰 거 아니야?"

"종아리에 하트가 있는데?"


라고 놀리기만 하던 흔한 한국 남자들의 반응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고, 캐나다에서 들었던 이야기와는 일맥상통하는 대답이었다. 어쨌거나 가녀린 몸이 되긴 글렀다 싶어 일단 그 친구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나의 운동 경험기가 시작되었다.


마침 그 친구의 집이 석촌호수 바로 앞인지라 데이트를 하러 가는 김에 석촌호수를 함께 뛰고 오기도 하고 혼자서 집 근처 한강변을 뛰기도 했다. 처음 달릴 때 경험했던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는 쉽게 경험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기분은 좋았다. 지방이 득실득실 붙어있던 하체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운명 같은 만남


다시 신촌의 본교에 돌아온 뒤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달리는 연세'


그전까지는 관심도 없었고 있는지도 몰랐던 대학교의 마라톤 동아리였다. 중앙동아리도 아닌 데다가 부실도 없이 활동을 하는 곳이어서 단 한 번도 내 눈에 띈 적이 없었다. 주변 학우들에게 물어도 "그런 게 있어?"라는 반응뿐이었다. 하지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달리기를 시작한 내겐 달리기 동아리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학교축제 기간 동안, 제대로 된 부스도, 많은 부원도 없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달리기'라는 단어가 내 눈에 그대로 꽂혔다. 마음먹으면 오늘 당장 시작해야 직성이 풀리는 난 그 길로 동아리에 가입하고 정기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역시 3km를 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러닝을 시작할 땐 킬로당 6분 30초 정도의 페이스로 매우 천천히 뛰었다. 1km 정도는 스퍼트를 올려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뛸 수 있었지만 장거리는 새로운 분야였기에 연습이 필요했다. 점차 시간을 단축시켰고 동아리 활동을 계속하던 중, 나이키에서 진행하는 대학별 러닝 모임에서 '연세대학교 캡틴'으로 선발되게 된다.


나이키 대학 캡틴은 각 대학별로 2명씩, 대학 내에서 자체적으로 선발해서 '나이키 러닝모임'에 참가할 학우들을 모집하고 인솔하는 역할을 한다. 나이키입장에서는 브랜드를 홍보할 기회이므로 캡틴들에게 각종 대회 참가권이나 의류, 신발들을 제공하는데 당시 참가 학교는 대략 12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때 잠시 '체대'를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미래에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난 체육을 잘하고 공부를 잘한다. 고로 체육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라며 막연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학생이 자기 장점을 잘 알고 진로를 정할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의 진로 희망서를 본 선생님은 "너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연세대 경영학과에 갈 수 있는데 왜 아깝게 체대를 갈라고 그래? 실기 준비하면 성적 떨어져서 절대 좋은 대학 못 갈걸?"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을 하신 선생님이 정확히 1년 후, "너 모의고사 성적도 안 나오는데 이대 수시나 써보지 그래?"라는 얘기를 하셨던걸 보면... 역시 진학 담당 선생님들에겐 학생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보다 좋은 대학에 한 명이라도 더 보내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내가 체대를 나왔으면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 싶은 생각이 종종, 아니 꽤 자주 든다. 하지만 이내 뒤를 돌아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지금 이후의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만 생각하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학창 시절 내 속에 있던 체육인으로서의 열망이 꿈틀꿈틀 피어나 달리기 동아리 캡틴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나는 역시 운동이 체질에 맞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엔 체육으로 밥 벌어먹고살 일은 그리 많지 않은 시대였다.


체육교사를 하거나, 운동선수를 하거나.


나는 사범대를 나온 것이 아니므로 교사를 할 수도 없었고 운동선수를 할 만큼 뛰어나지도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운동 잘하는 사람은 할 일이 참 많다. 요가나 필라테스 강사가 되고, 인플루언서가 되어 광고도 받고, 유튜브 영상도 찍고. 하지만 당시엔 개인 크리에이터가 아주 뜨문뜨문 생기던 시절. 인스타는 이제 막 퍼져나가던 때였으므로 13년 전엔 이 당연한 일이 절대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모든 콘텐츠를 장악하던 시대였다.


인플루언서가 될 그릇


당시 나이키에서 진행하던 대학별 모임에서 4~5명 정도를 선발해 모델을 시키고 간이 무대에서 신상품을 선보였는데, 그때 내가 모델로 선발이 되었다. 유명한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코디한 옷을 입고 간이 런웨이를 걷고 유명 포토그래퍼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였다.


키도 작고 몸매가 좋지도 않은 내가 무슨 이유에서 모델로 선택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웃는 사람을 원했던 거였을까? 이 뒤에도 방송 촬영 건수만 있으면 나는 늘 발탁이 되었다. (가수 스윗소로우와 손바닥TV라는 것을 찍기도 했었다.)


그때부터 개인 크리에이터 활동을 했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완전 달라져 있었을 테지만, 세상은 나를 그닥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모델로 발탁돼 사진 촬영도 하고 방송 출연도 하고, 각종 대회에도 대표로 나갔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지금처럼 일반인 인플루언서는 존재하지도 않고 체육인은 전공자밖에 없던 시대. 당시의 난 그냥 달리는 걸 좋아하는 학생일 뿐이었다.


본인은 왼쪽 두번째 회색티. 내가 10년 뒤에 운동 인플루언서가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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