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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기는 싫지만 하고싶은건 없어.

6화.

by 민듕쌤

"오~ 가나인 왔냐~?"


내가 반방(경영학과는 인원이 너무 많아 반이 나뉜다. 과방/동아리방 같은 것)에 들어가면 선배들이 마라톤 동아리 활동을 하는 나를 가나사람이라고 반겼다. 그만큼 운동을 작정하고 하는 여자는 드물었고, 특이했다. 당시엔 세상이 뒤쳐졌다는 생각 보다는 내가 좀 다르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 특이함이 무슨 장점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마라톤을 한다고 설치는 특이한 여학생일 뿐이었다.


시간은 어물쩡 흘러 졸업반이 되었다.


취업은 하기 싫고, 그렇다고 따로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워킹 홀리데이를 갈까도 생각했지만 캐나다에서 혼자 살던 시기는 너무도 외롭고 끔찍했다는 걸 알기에 선뜻 나설 수도 없었다.


운동 방면으로 진로를 선택하려고 해도 딱히 할만한 일이 안보였다. 지금이야 "필라테스 강사나 요가 강사 하면 되잖아?"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010년은 필라테스가 한국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필라테스'라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으니 '해볼까?'하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학교 수업에서 요가를 들으며 체험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건 절대 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 같았다. 요가로 성장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달까? 이 또한 운동업계를 꽉 잡고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나 허용된 삶 같아 보였다.


내가 진짜 운동으로 밥을 벌어먹겠다 작정을 했다면 이쪽 진로를 더욱 파헤쳤을거다. 하지만 당시의 난 자신감이 너무 없어서 얼굴도 못생기고, 키도 작고, 몸매도 좋지 않은 내가 쭉쭉빵빵한 언니들처럼 몸으로 먹고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죽어도 하지 못했다. 집이 부자여서 필라테스건 뭐건 개인PT를 받으며 몸매를 가꾸었다면 나의 운동 관련 재능을 살려보려고도 했을 수 있겠지만 '못생기고 키작은'나는 결국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당시의 나는 자존감이 이것밖에 안됐다.)


이제 남은 옵션은 몇개 없었다. 창업, 혹은 취업. 창업은 돈이 없어서 안되니 마지막 남은 취업이라는 문에 발을 들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남들 다 하는 취업준비를, 4학년 2학기가 되어서 겨우 시작했지만 막막했다.


The hardest part of the college isn't the school work. It's being on your own not knowing who the hell you are.

대학생활이 힘든 진짜 이유는 공부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누군지도 모른채 오롯이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넷플릭스드라마 Never Have I ever 中)



'인사 담당자? 마케팅 담당자? 회계 담당자?'


취업을 준비하던 동기들은 '학회'라는 학업을 연구하는 동아리에 들어가 한 분야를 심도있게 파헤쳤다. 그렇기에 대부분 4학년이 들어갈 때부터 어떤 분야의 공부를 더 하고싶은지, 혹은 졸업 후 어떤 분야의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지 등을 대략적으로나마 정해둔다. 때로는 학회의 선배들이 들어간 회사나, 만든 회사에 바로 스카웃 되면서 진로를 고민할 틈도 없이 일이 척척 진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취업은 하기 싫지만 뭘 할지는 모르겠는' 난 어떤 공부를 더 하고 싶은지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조차 머릿속에 없었기에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금융권'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은행FP, 파생상품 투자상담사와 같은 금융관련 자격증 4~5개를 취득했고, 면접 스터디에도 들어갔다.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있기는 하지만 '서류상'의 나는 꽤나 그럴싸했나보다. 명문대 출신, 교환학생 경험, 인턴쉽 경력, 높은 영어점수, 은행관련 자격증, 나쁘지 않은 학교성적 등. 뭘 해야할지는 몰랐지만 눈 앞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다보니 남들이 말하는 스펙이라는 것이 쌓여있으니 이력서 내에는 줄이 착착 늘어났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는 그야말로 자소설이 되어버렸달까? 학교를 다니는 동안 대단하게 이뤄낸 것이 없으니, "창의력을 발휘하여 성과를 낸 경험을 알려주세요" 라던가, "자신의 단점과 그것을 극복해낸 방법은 무엇인가요?"와 같은 질문에 내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보며 그럴싸한 스토리를 붙여내야 했다.


있지도 않은 일을, 아니 있었던 것 같지만 대단하지 않았던 일을 대단하게 만들어 내려니 자소서가 잘 써질리 없었다. 한 군데 자소서를 쓰는 데 거의 일주일 가까운 시간이 들어가다보니 하나 제출하고 또 다른 자소서를 쓸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꾸역꾸역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몇개의 기업에 입사원서를 넣었고, 서류를 넣은 6개의 대기업 중 3곳에서 서류합격 통지를 받았다.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돌아가니 열심히 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당시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 침체가 사회 전반에 퍼져있을 시기였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경기가 호황을 이루던 2000년대까지의 미국 금융권은 위험 천만한 모기지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기루와도 같은 믿음을 근거로 담보도확실치 않은 사람들에게 마구 대출을 해주고, 그것으로 또 금융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어차피 집값은 오르니까'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것. 미국 월스트리트 내의 투자회사 전반에 이런 말도 안되는 금융상품이 퍼져나가며 거대한 자본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주택 버블이 터지면서 그 모든 상품들이 부도가 나게되고 리먼브러더스라는 거대한 투자은행이 파산을 신청한 것을 시작으로 금융사들이 연달아 부도를 일으킨 사건을 지칭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IMF당시 기업 연쇄부도와 닮아있고. 지금 우리시대의 '전세사기'와도 일부 닮아있다.


사실 입학했을 2007년부터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이슈가 조금씩 화자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벌려놓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2008년에 미국의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전세계적인 경제침체가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입학할 때만 해도 선배들은 "야! 놀아도 돼! 그래도 다 좋은데 취업 하더라~"라며 공부하는 1학년을 도서관에서 끌고 나왔지만 3학년이 되자 "요즘은 1학년 때부터 공부 안하면 취업이 어렵다더라.."라고 할 만큼 세상이 변해있었다.


내가 취업할 당시엔 SKY대학생이라면 서류는 대체로 20-30곳 넣는 것이 보통이었고 많게는 50군데에 자소서를 쓴다고 했다. 그 외의 학교는 최소 50개, 많게는 100개 넘게도 서류를 넣어야만 겨우 한군데 취업이 된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시험운이 늘 따라줬다. 필기시험 준비를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금융권 시험을 준비한 덕분인지 이런 운 때문인지 필기시험도 수월하게 통과했고, 실무면접까지 마치 취업행 특급열차를 탄 것 마냥 거침없이 달려갔다.


초심자의 행운은 불행이다.


첫 스타트가 너무 좋았다. 자소서를 쓰는게 너무 힘들어서 몇군데 넣지 않았지만 서류 합격률이 좋으니 무작정 '이 중에 아무데나 갈 수 있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면접은 실전에서 경험을 쌓고 대비를 하는게 가장 중요한데 나는 정말 가고 싶은 몇곳에만 서류를 넣었으니 마구 탈락하고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반드시 한번에 합격해야만 했다.


그러나 세상 어눌하고 세상물정도 모르던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탄탄대로처럼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던 서류전형과 달리 면접에서는 빛의 속도로 탈락(광탈) 하고있었다.


IBK 기업은행 실무 합숙면접, 탈락

KT 실무면접, 탈락

...



그렇다고 마음이 초조하지는 않았다.


'하기 싫은데 잘 됐지 뭐.'


이때부터는 정말 드문드문 자소서를 쓰는 일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집에 틀어박혀 하루 10시간씩 미드만 보며 칩거하는 생활을 매일같이 이어갔다.


히어로즈, 프리즌브레이크, 가십걸, 위기의 주부들, 빅뱅이론 등의 유명 미드를 밤을 새워 보는 생활이 이어졌다.


새벽 5시 취침, 오후 1시 기상.


안되면 한 학기 더 집에 틀어박혀 구직활동을 해야하는건가 싶던 어느 날, 매일같이 미드만 보던 생활 끝에 자막없이도 80% 이해할 수 있는 듣기수준에 이르렀다.


'이대로 번역가나 되어볼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대학생활 중에 '통번역 전문가'가 되어볼까 싶어 알아본 적이 있었는데 이 시절 나의 모든 결심은 '생각'에 그쳤더랬다.


면접에 연거푸 탈락한 이후에도 여기저기 공고들을 보며 기웃거렸지만 도저히 가고싶은 회사가 없었다.


'여기는 직장 문화가 너무 남성위주라던데.'

'여기 들어가면 월화수목금금금 살다가 아파서 퇴사해야 된다며?'

등의 핑계를 들어가면서 이것저것 쳐내고나니 남는 회사가 거의 없었다.



도대체 취업이 왜 그토록 하기 싫었을까?


첫째.

그도 그럴것이 나는 짜여진 틀 안에서 사는걸 극도로 싫어해 중고등학교시절 내내 학원 한번 꾸준히 다녀본 적이 없었다. 단과반으로 필요한 내용만 듣거나, 부족한 부분만 과외를 받거나. 그런 내가 남의 지시를 받으며 정해진 룰 안에서 살아간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시작부터 틀어진 것을. 여자인 내가 남성의류 전문 백화점에 가서 "내게 꼭 맞는 옷은 왜 없냐!"면서 한탄하고 있는 셈이었다.


둘째.

취업준비를 하던 시기의 나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대학에만 들어가면 뭐든게 끝일줄 알고 숨한번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열심히 살면 내 인생을 누군가 보상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남들 하는 건 다 따라하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대학교 입학 이후 교환학생을 가기까지 단 한번도 부모님께 손벌리지 않았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지만 왜 하필 취업을 해야하는 시기에 번아웃이 와버린건지 아무 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조금씩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의 카드, 일명 엄카를 쓰기 시작했고 그 안락함에 취해버렸다. 조금만 더... 딱 한학기만 더 집에 틀어박혀 쉬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캄캄한 컴퓨터방 안에서 나의 불꽃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우리때는 중학교때부터 공부하고 대입을 준비하면 적당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경쟁이 시작된다고 한다.
대치동엔 '유치반'이 있을 정도로 초등학교 입학 전의 아이들이 벌써 대치동 학원강의를 들으러 멀리서도 찾아오거나 집을 대치동으로 옮긴다. 5살부터 스무살, 아니 취업을 하는 시기를 20대 후반이라고 친다면 꼬박 20년 이상을 진학과 취업만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통틀어 대략 11년 정도를 열심히 살았던 나도 지쳐 나가떨어졌는데...



다음해, 졸업을 하는 즈음 아버지가 "너 지금 아니면 평생 취업 못한다더라"라고 내게 점쟁이의 말을 전했다. 그 말만 들었다면 "딸을 그렇게 저주하고 싶으세요?!"라며 버럭 화를 냈겠지만 여기저기 갈만한 회사를 알아봐 주셨고, 집에만 누워있던 히키코모리는 얼떨결에 멀쩡한, 아니 꽤나 좋은 회사에 덜컥 합격을 하게 된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살라고 마음먹었던 겨울곰이 잠에서 깨어 먹이를 찾아 다시 세상에 발을 딛기 시작하는데..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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