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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나와서 필라테스 강사 하는데요?

1화. 퇴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by 민듕쌤
좋은 대학교를 나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지? 아니 그보다, 대학을 졸업하면 뭘 하고 먹고살아야 잘 사는 거야?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필라테스 강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같았다.


"그동안 공부한 거 아깝지 않아? 갑자기 왜?"

"부모님이 반대 안 하셔?"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하고 직장생활 잘하다가 뜬금없이 뭔 필라테스 강사인가 싶었을 거다.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 만류했지만 나의 확고한 결심을 들은 이들은 이내 굳이 내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로 한듯


"너라면 잘할 것 같아."

"잘 어울려."

등의 말로 응원을 해주었다. 그들의 마음속에선 여전히 대체 왜 저런 결심을 한 건가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만 응원은 응원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글쎄,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면 좋은 회사를 다니거나 회계사를 하거나 사업을 해야만 "역시"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걸까?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나온 친구들을 보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사업체를 키워 크게 성공한 친구도 있고, 30대 대기업 또는 금융 공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친구들도 상당수, 유망한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거나 빅 4 회계법인에서 회계사를 하는 친구 등 역시 '잘 나간다'의 표본인 동기들이 많다. 간혹 무슨 공부를 한다고 했다가 잠수를 타고 사라진 경우도 있고 월 80만 원을 받으며 보조작가 일을 하고 있는 학우도 있지만 비율상 이런 경우는 극소수에 해당된다.


이루고 싶은 커리어적인 목표도 없었던 난 근무조건이 좋으면서 돈도 많이 주고 스트레스도 없는 회사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런 곳이 존재한다면 정말 소수의 최상위권 친구들이 이미 점령했을 터. 뭘 해야 할지 몰라 어영부영 대학생활을 보낸 내게 그런 귀한 자리가 내어질리 없었다. 그냥 그림속에 있는 비싼 호텔을 바라보며 '와 저런데가 있구나 좋겠다.'하며 이내 잊어버리는 정도였달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내 목표는 오직 '연세대 입학'이었다. 오직 그 목표 하나를 향해 지독히도 힘든 시간들을 이 악물고 견뎌냈다. 그 노력이 가상해서일까?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왔는지 수능 점수가 내가 필요한 만큼 딱딱 나와줬다.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재수도 하지 않고 염원하던 대학에 번에 붙어버렸다.


하지만 내가 피똥 싸서 들어간 그곳은 누군가에겐 목표가 아닌 과정 같았다.


입학을 하자마자 다들 진로가 정해진 사람처럼 영어점수도 척척 따냈고 이미 머릿속에 어떤 공부를 하고 싶다는 대략적인 그림이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동기 중 하나는 입학 전부터 회계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니.. 경영학과를 나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조차 없던 난 그저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1학년 2학기 원어민 영어회화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다음 시간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골라 그 사람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준비시간을 드리고 한 사람씩 차례대로 발표해 볼게요." (물론 원어민 선생님이니 영어로 말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미술가에 대해 발표하기로 하고 그들에 대해 조사를 했다. 그들에 대한 간단한 조사 뒤에 모르는 단어를 영어로 바꾸고 스크립트를 완성했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지?"


성적에 큰 관심이 없던 1학년 때라 열심히 준비 안 한 탓도 있겠지만 내게 영어는 듣기와 읽기에 한정되어 있을 뿐,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해보지 않은, 언어가 아닌 학문에 불과했다.


"Um... Manet and Monet are good friends. They are famous artists."


그리고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젠장..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


그렇게 모두가 유창한 영어실력을 뽐내는 사이에서 유일하게 나 혼자만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목표만 없을 뿐 아니라 영어도 못하는 멍청이인 것이었다.


그래도 나름 수능에서 98점을 받았을 정도로 영어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말하는 건 배워본 적이 없으니 어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방학 때마다 미국으로 영어 캠프를 다니던 강남 학생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창피했다.


그래도 시험 점수는 조금 낫겠지. 그간 열심히 단련해 온 읽기와 듣기를 평가하는 토익 시험을 보기로 결심하고 1~2주 정도 공부해 850점이라는 고득점을 얻어냈다. 스스로 내심 뿌듯했다.



그 뒤 어느 날, KATUSA(카투사, 미군에 근무하는 한국군인)에 지원하는 동기들과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야! XX는 700점 안 넘어서 지원 못한다며? ㅋㅋㅋ 진짜 어이없다."

토익 700점은 당연히 넘어야 하는 우리 세상에 그 친구는 놀림거리가 되었다.


"난 850점인데."

한두 명이 점수얘기를 꺼내자 나는 자랑스럽게 내 점수를 공개했다. 그러나 칭찬을 받을 것이란 내 기대는 와장창 깨어졌다.


"ㅋㅋㅋ뭐? 넌 900점을 못 넘었어?"


청천벽력 같은 그의 말과 가소롭다는 듯한 눈빛에 내 모든 희망이 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나름 자신이 있던 유일한 과목인데, 그렇게 무시를 당하다니. 창피함과 민망함에 눈앞이 하얘지면서 등줄기에 땀이 쪼르륵 흘러내렸다.


마침 다음학기에 받고 있던 외부장학금이 나오지 않던 차였다. 그대로 학교를 다녀봐야 돈 버느라 허덕이기만 할 것이 분명했고 이렇게 창피를 당한 채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돈도 벌고 영어공부도 할 작정으로 바로 다음 학기에 휴학을 한 후 어학원 알바를 시작했다.


'두고 봐라. 내 금세 너를 앞질러 줄 테니.'




새로운 매거진의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전 매거진을 연재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관심을 받고 좋아요를 받으면서 제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지를 알게 됐어요.


[가난한 자유를 얻어보기로 했습니다]의 에필로그에 적었던 것처럼 돌연 퇴사를 결심하고 필라테스 강사가 되었던,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저의 인생 이야기를 조금 길게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중구난방이던 이전 매거진에 비해 이어지는 스토리로 연재가 될 예정이라 중간에 새롭게 들어오는 독자들에겐 비교적 덜 친절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책으로 엮을 때를 대비하면 이게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시시할 수도 있지만 누구든 겪고 있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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