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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립 Aug 14. 2022

고기능 ADHD라는 게 말이 되나요?(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경험하고 쓴 성인 ADHD이야기

정신과 수련을 마친 후 군의관 복무를 갓 마친 전문의 시절, 제 스스로도 ADHD라기보다는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들 때문에 강박증이라고 생각하고 항우울제열심히 자가 복용 중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ADHD가 성인기에 진단받고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학회에서 간접 경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성적이 이렇게 좋은데 ADHD까지는 아니죠"라는 틀린 조언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성인 ADHD에 대한 진료 경험을 쌓아가면서 학업 성취나 직업 성취가 높지만 ADHD를 진단하게 되는 사례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적이 좋은데 왜  ADHD인가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ADHD라고 하는 거 자기 성격을 합리화하려고 그런 거 아니에요?

라는 인식이 있고 실제로 논란이 될 만한 쟁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에서는 부끄러운 제 어린 시절을 보여드리고

세 번째 (하) 편에 학술적 관점에서 고기능 ADHD 개념과 그 취지에 대해 서술하고자 합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면서 학업에서 무조건 해야만 하는 과목과 할 필요가 없다며 팽개치는 과목이 나뉘었습니다.

심지어 미술 실기 평가 과제를 내지 않고 오기로 버티어서 담임선생님이 스케치북을 펴 놓고 한 시간을 어르고 달랬던 부끄러운 기억을 연재 첫 이야기에 공개했지요.

도덕 과목을 담당하신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셨는데 적응이 어렵거나 가정환경이 열악한 학생을 각별히 신경 쓰고 챙기신 군자이셨습니다.

'선생님 속을 썩여서 죄송합니다 ㅜㅜ 그리고 지금은 미술. 사랑합니다.'


그 선생님께서 집에 보낸 통신문입니다.

담임선생님의 통신문

시골 도시였지만  중학교 입학 당시, 과학 영재 육성을 위해 전국 시도 교육청에서 학교별로 소수 학생들을 모집해서 과학, 수학, 영어 심화 교육을 하는 정책이 시작한 때였습니다.  저는 그 공부에 올 인을 하느라 다른 과목을 챙겨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거죠. 우물에서 살다가 그곳에 간 첫 주에 수업이 하나도 이해가 안 된다며 집에 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행학습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다가 영어 책을 6학년 졸업하고 처음 구경했습니다.

(입학 전에 사촌 누님께서 아버지의 부탁으로 정음 기초영어? 인가로 한 달간 개인 교습을 해준 기억이 납니다. )


영어 부진에 한이 맺힌 저는 영어 단어장을 손에서 놓지 않고 다니게 됩니다.

그 시절의 제 모습은 드라마에서 두꺼운 안경을 쓰고 책만 보고 있는 찌질한 모습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 선생님께서 진취적인 생활 태도를 요청한 것도 내꺼 공부 말고는 주변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심지어 소풍 때도 제 손에는 영어 단어장이 들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소풍 때 단어장을 손에 들고 있다가도 전 학년 단체 행사 노래자랑 시간 때에 아무도 추천하지 않는데 제가 반 대표 가수를 자청해서 나갔다는 거죠.


Crazy!


중1 때는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

중 2 때는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로요


'사랑의 미로'라는 어머니 애창곡.

3절까지 있습니다.


3절까지 다 불렀습니다.

당시 3절 첫 소절인 "때로는~~~" 할 때 선생님들께서 다 쓰러지셨습니다.


그런데 왜 쓰러지시는지 그땐 전 몰랐습니다.

첫 연재에 언급했던 체육선생님은 원래 저만 보면 쓰러지셔서 '그런가 보다' 했구요.


난 정말 몰랐었네~~

멜로디가 떠오릅니다.

 (요즘 우영우 OST작곡으로 다시 핫해지신 노영심의 '그리움만 쌓이네" 가사 중에서.. )


알 수 없는 반항과 고집불통 그리고 어이없음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큰 싹수가 보였는데요.


5학년 때 같은 반 아이 중에

'나와 친한 형이 OOO파에서 뛰는 ㅁㅁㅁ형님의 후배다'라며 거들먹거리는 동급생이 있었습니다.


그게 거슬린 저는 감히 결투를 신청하고 학교 쓰레기 소각장에서 2명의 동급생 심판 앞에서 대결을 했습니다. 그리고 코피 터지게 흠씬 맞았지요.

저의 유일한 공격 포인트는 근거리에 왔을 때 머리끄덩이 잡기 1점뿐이었습니다.

아니, 반칙으로 보아 심판 친구들이 말려서 떼어냈네요.

어쨌든 마무리는 다 같이 분식집? 문구점? 에 가는 것으로 훈훈하게 끝났습니다.


어이없음의 끝판은 졸업 때였습니다.

어린이 학생회장이라서 졸업생 대표 답사를 낭독할 예정이었는데 졸업 전날까지 거부한 거죠.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이기적이다. 못 됐다' 등 독설과 함께 큰 한숨을 쉬던 장면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제가 졸업생 대표로 교육감상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이콧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간이 배 밖에 나온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아, 결국 답사 낭독은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부전여전 연재에서 우리 OO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아직 없어서 글짓기를 못하겠다며 버틸 때 저나 아이 엄마가 느꼈던 "제정신이야?"라는 속마음은 어린 시절 저를 겪었던 선생님들의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우리  OO이의 어이없는 행동은 저라면 꼭 이해해야 할 몫입니다.


아버지는 저, 그리고 저 보다 훨씬 좌충우돌 우당탕탕 인 동생을 "말 안 들으면 매가 약이다"라는 신조로 대해주셨습니다.  학기 초에 선생님께도 '애가 말 안 들으면 사랑의 매를 마음껏 베풀어주십시오'를 당부하시는 분이셨죠. 덕분에 동생은 학교 재단의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싫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흠씬 맞기까지 했습니다.  회상을 시작하니 글이 산으로 가네요.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 때 사회 시험  몇 문제를 몰랐다는 이유로 답안지 제출을 거부하다가 교무실로 불려 간 일도 있습니다. 전날 깜빡 잠이 들어 시험 준비를 하지 못해서 당연히 맞춰야 할 사회과목에서 몇 개 틀리는 상황이 원통하고 그로 인해 경쟁 상대들에게  밀리는 전체 성적표를 받아보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당시 사회 선생님이 공교롭게 담임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학기말 성적표에 보내주신 생활 통신문입니다.

여기서도 성적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표현을 보니 당시에도 성적의 등락이 컸나 봅니다.


이렇듯 자신의 기저 기능에 비해 수행이 저조하거나 큰 기복을 보이는 것도 ADHD의 특징이자 고기능 ADHD 개념이 등장하고 치료와 중재도 필요할 수 있다는 대목입니다.


자기 조절 기능이 떨어지거나 고집스러움으로 인해 환경 적응과 꾸준한 일상생활을 고르게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신경 인지적 관점에서 성적이나 수행의 기복을 역시 제 사례를 통해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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