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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립 Sep 14. 2022

ADHD 유형탐구(3) 아니,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경험하고 쓴 성인 ADHD 이야기


27세 김태원/남성, 항상 투덜거리는 프로불만러 ADHD


태원 씨는 입사 5개월 차입니다. 사수인 김대리는 신입이면서도 왠지 나사가 풀려있는 듯한 모습에다 항상 말에 토를 다는 태원 씨가 못 마땅합니다. 일주일 전 회식 자리에서 김대리는 술기운을 빌어 태원 씨에게 한 소리를 합니다.


김대리: 김태원! 우리 술 햔잔 해쓰니까! 내.가. 오늘~~를 위해서 ~~마디만 하자. 샤.생활은~ 그러어케 하는 거 니다. 너 임마!쟉년에  제대했다면서!  뭐냐 거기.  필!승! 별똥별인가 퓨른별인가 청성 6샤단 나왔다면서! 뺙센데 있다 왔다면서! 야 나도 그 바로 옆에 뱩!꼴! 이웃...

  

태원의 눈에 힘이 들어가고 이를 얼마나 악무는 지 턱근육이 씰룩거린다


김대리: 내가 쟐~~알려주면 햔. 번. 이라도 그냥 "네!" 하고 하면...    안 되겠냐? 맨~~날 '왜요?' '제가요?' 그럴 때마다 내가. 내가.. 쇽 터져 쥭.겠다. 나야!힘없는 대리지만! 너 임마! 위에 찍히면 너만 힘들어! 엉!어?


태원: ...  (조용하게) 지나 잘할 것이지.


'우당탕탕' 김대리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섭니다.


김대리: 뭐? 이 새끼가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


그 순간 신 과장과 박 대리가 둘을 겨우 뜯어말립니다.


그다음 날,  신 과장이 태원 씨를 호출합니다.


신 과장: 태원 씨. 반성하고 있지? 내가 김대리는 잘 타일렀으니까 오늘 내로 꼭 사과하고. 응? 알았죠?


태원: ......

신 과장: 아. 정말. 대답 좀 해봐요. 그 표정으로는 사과하러 갔다가 또 싸움 나겠네.


태원: 죄송합니다. 저도 대리님한테 쌓인 게 좀 많아서요


신 과장: 하..  태원 씨. 김대리도 성격이 좀 급한데 저 정도면 정말 노력하는 거예요. 내가 당부한 것도 있고.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김대리가 오죽하면 부서 이동까지 신청한 거. 그거 몰랐죠? 태원 씨가 아무리 배우는 중이라고 하지만 일을 늘 마감까지 붙들고 있으니까 김대리도 늘 결재 올리는 게 늦어지고. 마감은 급한데 고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말이지. 다 김대리가 수습하고 마무리하느라 고생했는데 태원 씨가 좀 너무하네.


태원: 과장님도 너무 하십니다. 언제 제가 하라고 한 일 안 한적 있습니까? 대리님이 별 것도 아닌데 다시 다 고쳐서 쓰라고 해서 퇴근도 제시간에 못한 게 한두 번이 아니고요. 저도 할 말이 많습니다.


신 과장: 하~~ 그래요. 태원 씨도 억울한 게 있겠지. 보아하니 김대리와 문제는 내 선에서 어떻게 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고민해 볼...


태원: 저야 말로 다른 부서로 옮겨주십시오.


신 과장: 태원 씨! 윗사람이 말할 때 말 끊지 말고. 제발 발끈하지 좀 맙시다.


태원: 제가 언제 발끈했다고 그러십니까?


신 과장: 됐고. 태원 씨 여기 직장이 아니더라도 사회생활 꾸준히 하려면 그 성격 좀 어떻게 해야 할 거예요. 정말 미워서라면 이렇게 불러서 말도 안 하고 그냥 인사부에 절차대로 처리하면 될 일인데 나도 태원 씨를 생각해서 이렇게 풀어보려고 하는 거예요. 본인 자신을 위해서 어디 상담할 수 있는 데라도 알아보세요.


태원: 저한테 지금 정신과 가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신 과장: 아.. 그만합시다. 지금 나갈 데가 있으니까..


실은 태원 씨는 오래전에 정신건강의학과에 잠시 다닌 적이 있습니다.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대학생활의 낭만을 만끽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생회 임원을 포함한 7명의 선배들에게 불려 가서 조리돌림을 당한 것이었죠.


'야. 너 선배한테 인사도 안 하고 눈 마주치면 째려보더라'
'선배 말이 말 같지가 않지? 전에 내가 OOO 물어봤는데 너 말투가 X나 성의가 없더라.'
'학생 식당에 네가 전세 냈냐? 어? 옆 테이블에 선배들이 있는데 소리를 지르고 웃고 떠드는데. 내가 그날 뒤집어엎으려다가 OO이가 말려서 참은 거다.'
'김태원. 김 교수님도 너희 반이 예의가 없다고 하더라. 그거 너 때문인 거 아냐?'


한 시간을 비난과 설교를 하며 굴복을 요구하는 것에 충격을 받은 태원 씨가 정신과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태원 씨는 정신과 선생님에게 선배들에 대한 분노와 부당함을 한참을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선배를 째려본 적도 없고 무시한 적이 추호도 없는데 선배들이 후배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 자신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두 번째 상담 세션에서 선배들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기 위한 진단서를 끊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쌤: 김태원 씨. 저희 진료과 특성상 한 번 진료로 진단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정신질환이라는 게 현재 단면의 시점으로 평가할 수가 없거든요. 일정 기간 동안 일관된 증상이 있는지, 원래의 상태와 병적인 상태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심리검사도 필요합니다. 최소한 한 달 이상은 평가를 지속하셔야 합니다.


태원: 해주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거죠?


쌤: 네? ...


태원 씨는 그 길로 휴학 신청을 하고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입대 후 8개월 일병 시절 어느 날.


박 병장: 야 김태원. 또 이딴 식으로 할래? 내가 행보관에게 알리는 것은 분대장이 먼저 알아야 한다고 했어 안 했어?


태원: 하셨지 말입니다.


박 병장: 근데? 씨 O, 내가 OO으로 보이냐? 어? 군대 개판되었다고 하더니 여기네 여기. 군대가 기강이 없어. 분대장이고 지휘관이 필요가 없어.


태원: 아니. 그래도 행보관님이..


박 병장: 야. 귀먹었냐? 내가 말한 거 안 들었어? 너 신참 때부터 제멋대로 하더니. 뭘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지 고집부리는 거네.


이후로 태원 씨는 박 병장 앞에서 입을 닫았습니다. 소대장의 중재도 통하지 않고 결국 태원 씨는 사단 내 부적응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캠프에서 몇 주 지낸 후 박 병장이 전역한 후에 부대에 복귀했습니다.


당시에도 군 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담당 군의관은 태원 씨가 피해의식이 많고 수동 공격적인 성격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태원 씨는 억울했습니다. 남들과 같은 실수에 대해서도 항상 왜 자신만이 더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목되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신 과장과 면담 중에 정신과 진료를 권유받고 욱하는 마음에 거부감을 표현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에게 남들과 다른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전에 두 번 가고 발길을 돌린 적 있던, 또 군복무 중 민간 진료를 요청해서 잠시 다니기도 했던 그 정신건강의학과에 또 다시 방문했습니다.


몇 년 만이지만 선생님은 태원 씨를 기억하는 듯했고 자신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리고 첫 방문 때 느꼈던 수치심도 덜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경계심을 풀고 어릴 적 기억의 단편을 선생님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이스 대국민 서비스를 통해 온라인 발급을 받은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3학년: 명랑하고 활발한 성격으로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나 과제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할 때가 있음.
4학년: 재치 있는 말로 주변을 즐겁게 하려는 모습이 있고 사교성이 좋으나 학습 태도 면에서 다소 산만할 때가 있고 가끔 장난이 지나칠 때가 있어 차분함과 침착성이 요구됩니다.
5학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나 가끔 장난이 지나치거나 자기주장이 강해서 마찰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품이 정직하기 때문에 조금만 타협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바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6학년: 과묵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의 관심 분야에 몰입을 잘하는 학생이나 관심이 적거나 원하지 않는 일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아쉬움.  단체 활동보다는 개인 활동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며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기대됨.


태원 씨는 자신이 늘 의욕이 없고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피해 숨는 성격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생활기록부에 활발하고 적극적 모습으로 쓰여있는 것이 의외였다고 합니다.


찬찬히 기억을 떠올려보니 9살 때까지는 호기심 많고 노는 것이 늘 즐거운 명랑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준비물을 챙기지 못해서, 학교 등교시간에 지각해서, 숙제를 해가지 못해서 자주 혼나게 됩니다.


태원: 선생님. 저도 이거 보고 "아. 나도 명랑하고 적극적인 때가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쌤: 네. 태원 씨가 성장하면서 자꾸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게 되니까 점차 소심해지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진 것 같네요.


태원: 그래도 3학년 때는 소풍 때 분위기도 띄우고 친구들도 재미있어했던 것 같은데..


쌤: 그렇군요. 그런데 언제부터 부정적인 평가나 쓴소리를 주로 많이 듣게 된 것 같나요?


태원: 3학년 때까지는 준비물을 안 챙겨서 선생님한테 잔소리를 듣긴 했어도 그렇게 많이 혼나지는 않았는데.. 4학년 때부터 조금씩 달라진 것 같습니다.


쌤: 그때 기억은 어떤데요?


태원: 4학년 때 선생님이 꼰대 스타일이었는데 저만 딱 찍어서 혼내고 벌주고. 아 씨. 생각하니까 열받네.  친구들과 똑같이 장난을 쳐도 꼭 저만 불러내거나 더 많이 벌을 세웠습니다.


쌤: 친구들 여러 명이 같이 장난을 쳤는데 왜 태원 씨한테만 유독 그러셨을까요? 태원 씨가 선생님한테 안 좋게 찍힌 걸까요? 아니면 태원 씨 행동이 좀 더 눈에 틔어서였을 수도 있나요?


태원: 저한테만 더 심하게 했죠..  아..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쉬는 시간에 장난치다가 선생님 오면 다 조용한 척하는데 제가 가장 늦었어요.


쌤: 선생님이 오신 것을 늦게 알아채거나 조용한 척하는 게 늦었다는 거죠?


태원: 네. 그래도 저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그런 게 아니라는거 뻔히 알 텐데 저만 갈구고 혼내고. 저를 잡아서 반 분위기를 잡으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쌤: 그때부터 활발하고 주저없이 앞에 나설 수 있는 적극적인 성향이 바뀌게 된 것 같나요?


태원: 아무래도 영향이 있었죠. 조금만 떠들어도 저만 혼내니까 제가 그때부터 쭈구리가 된 것도 같고.. 그래도 5학년 때 1학기 까지는 애들하고 잘 놀고 했습니다.


쌤: 음.. 그렇다면 2학기에는 반 친구들과 관계에서 달라진 일이 있었나요?


태원: 네. 그때부터 이상하게 애들하고 놀다가 꼭 한 번씩 싸우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름 방학 지나고 개학하니까 친했던 애들이 저를 피하고 지들끼리만 다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방학 동안 자기들끼리는 자주 만나서 놀았다고 해서 저도 그냥 무시를 했습니다.


쌤: 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태원 씨가 ADHD 증상으로 인해서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오해를 받은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태원: ADHD라면 집중력이 없는 건가요?


쌤: 진단명 자체는 주의력 장애를 의미하지만 실제 증상은 더 광범위하게 나타나는데요. 아마 태원 씨가 잘 기다리지 못하고 급한 성향이나 주변 상황의 변화를 잘 알아채지 못하고 시간관념이 부족한 것까지 모두 ADHD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원: 아..  그런 것도 다 증상에 포함됩니까?


쌤: 네!  그런 면이 태원 씨가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예의가 바르지 않거나 상대를 무시한다고 오해를 받게 만드는 것 같아요.


태원: 아.. 선생님. 그런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아. 진짜.  어디 가면 내가 지를 무시한다고 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아니 난 관심도 없고 그런 적도 없는데. 아휴..


쌤: 그게. 태원 씨가 잘 기다리지 못하고 생각을 말하거나 행동하는 식으로 반응을 해버리거나,  순간 딴생각을 하는.. 그니까 멍 때린다고 도 하죠? 그런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사인이나 메시지를 놓치게 되면 상대가 무시당했다고 오해하는 일이 좀 더 생길 수가 있어요.


태원: 저는 진짜 억울합니다. 아니. 내가 무슨 싸우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데..


쌤: 그니까요. 어린 태원 씨는 훨씬 억울했을 것 같아요. 저 같아도 그런 상황이면 '왜 나만 가지고 그러지?' '왜 나는 인생이 자꾸 꼬이지?' '왜 나랑 안 맞는 사람들만 만나지?'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요.

태원: 네.....


쌤: 그런 억울한 생각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피해의식이 될 수도 있거든요. 상대방이 실망하거나 안 좋은 반응이 계속되니까 내 마음은 방어를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저 사람 또 그러겠지? 하고 마음이 알아서 준비를 하는 거죠. 그리고 때로는 반격을 준비하기도 하고요.  그런 심리 격적 경향을 "수동 공격적"이라고도 해요. 그런데 태원 씨가 수동 공격적 성격장애가 있다기보다는 ADHD로 인해 마음이 다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그런 경향이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태원: 고등학교 때 제 절친이 저한테 '투덜이 스머프'라고 불렀습니다. 걔는 저랑 친해서 그렇게 불러도 화는 안 나고 그렇게 부르나 보다 하고 받아들였는데. 제가 정말 투덜이 스머프인 거네요.

쌤: 하하. 죄송합니다. 웃으면 안 되는데. 이미지가 겹쳐지기도 해서요. 역시 어떤 사이인지에 따라 그 사람이 하는 말의 의미부여가 달라지네요. 제가 방금 전 웃었던 것도 가까워져서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주세요.

 

태원: 하하. 네. 그럼요. 그런데 저는 정말 아주 어릴 때부터 다 꼬였네요. 선생님 이런 것도 치료가 가능합니까?


쌤: 네. 물론 억울한 마음 자체를 치료약이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오해받는 상황이 줄어들고 좋은 관계나 일적인 성취감이 쌓여가면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차츰차츰 바뀌어 갈 수 있어요. 약은 그런 경험을 쌓아가는데 틀을 만들어주는 역할이고요.


태원 씨는 제대로 된 진단을 받기 위해 AARS 자가보고 설문 검사와 전산화 주의력 검사(CAT)를 받았습니다.

AARS에서는 부주의, 충동성, 정서조절 영역이 모두 높게 나타났고 CAT에서도 단순 청각 주의력, 억제 지속 주의력, 간섭 주의력, 분할 주의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양상이었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태원 씨를 부주의형과 과행동-충동 성형 모두가 있는 복합형 타입의 ADHD로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합니다.


(상기 사례는 진료를 받았던 특정인의 개인사가 결코 아니며 상당수의 성인 ADHD 진료 경험을 토대로 한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증상과 참고 문헌의 사례를 재구성하여 작성한 가상의 사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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