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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립 Sep 03. 2022

ADHD 유형탐구(1) 사회부적응자가 될 줄 몰랐어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경험하고 쓴 성인 ADHD 이야기

25세 이나미/여성 [사회 불안증으로 나타난 ADHD]

나미씨는 직장에서 자꾸 실수를 하게 되어 직장 눈치가 보여서 늘 불안하고 밤이면 우울감이 심해져서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불과 3년도 안 되었는데 벌써 네 번째 직장입니다.

첫 직장을 3개월 만에 그만둘 때는 직장 분위기가 너무나 권위적인 환경이었기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직장에 입사한 후 3달간은 새로운 일을 배우고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적응은 되었는데 스스로도 어이없는 실수가 반복됩니다. 숫자 입력이 잘 못 되어서 주문 발주에 차질이 생기고 전달 사항의 일부를 전하지 못해서 많은 사람이 고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나미씨는 시작이 꼬였다는 생각이 들고 직장에서 실수하는 사람으로 인상을 심어준 것을 견디기가 어려워 새 직장에서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주저 없이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구직한 지 한 달만에 세 번째 직장에 합격했습니다. 입사 초기에 '이번에는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의욕이 넘쳤고 주변으로부터 활발하고 명랑하다는 평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5개월 차에 들어가면서 사수인 대리님이 그녀 앞에서 한숨을 쉬는 일이 잦아지고 처음에는 좋은 평가를 해주셨던 과장님도 실망하는 눈치입니다. 나미 씨는 자신이 말을 꺼낼 때마다 분위기가 가라앉거나 조용해지는 것 같다고도 느꼈습니다. 다들 자신에게 뭔가 유감이 있거나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말을 피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 무렵 고등학교 1학년 학기 초에 친했던 몇몇 친구가 2학기에 들어 자신을 따돌려서 힘들게 지냈던 기억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상처가 재연되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밤잠을 설치게 됩니다. 그래도 1년까지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견뎠습니다.


어느 날 과장님이 나미씨를 불렀습니다.


"나미 씨, 요즘 무슨 일 있어요? 요즘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나미씨는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말문이 막혀 제대로 말도 못 했습니다. 결국 자신이 민폐라고 생각이 들자 사직서를 제출하고 8개월 만에 직장을 떠났습니다.


한 직장에서 오래 경력을 남기지 못한 영향인지 10군데를 넘게 면접을 보았지만 부르는 곳이 없습니다. 부모님 눈치도 보이고 불안해지자 어디라도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절대 그만두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다행히도 6개월 만에 취업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잘 적응해서 오래 다녀야지.' 속으로 수 백 번 다짐하며 입사한 첫 날부터 사람들 눈치가 보이고 주눅이 들었습니다. 또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핀잔을 듣게 될 까 봐 걱정을 하다가 밤 잠을 설치고 출근을 했습니다.


바짝 긴장을 하며 실수를 안 하려 할수록 더 집중이 안 되었습니다. 거래처에서 전화를 받아도 무슨 말인지 들리지가 않고 선임이 업무에 대해 알려줘도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나미씨는 자신이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이 들고 더 자신감을 잃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럽고 자신의 이름만 불러도 손에서 땀이 나고 초조함을 느꼈습니다. 그럴수록 사무실 내에 사소한 소음이나 전화벨도 신경이 쓰이고 도무지 일에 집중이 안 되었습니다.


결국 나미씨는 자신이 앞으로 어디에도 적응할 수 없는 구제불능이라는 절망적인 생각에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합니다.




담당 선생님은 나미씨와 상담 후에 우울증과 사회 불안증이 의심이 된다고 알려주고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해주었습니다.


나미씨는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직장에서의 과도한 긴장과 퇴근 후 찾아오는 끊임없는 자책감이 점차 줄어들면서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감이 없고 사람을 피하는 자신이 너무 변한 것 같고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겨우 직장은 다니고 있지만 친구를 만날 의욕도 없고 취미 생활을 시작할 마음의 여유도 생기지 않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말하기를 좋아하고 때때로 명랑하기까지 했던 그녀였지만 직장 사람들은 모두 나미씨가 내향적이고 말 수가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밤이 되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오늘 했던 말 중에 실수는 없었을까.'

'오늘 과장님께 제출한 서류에 오타는 없을까..'

'김대리님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내일 결제 맡아야 할 일들이 뭐였지?'

'주말에 OO이가 보자고 했는데 어떻게 거절하지?'

'우리 ㅁㅁ이(고양이)가 자주 아픈데 오래 못 살면 어떡하지?'

'고 1 때 나를 따돌렸던 친구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나는 여기 직장에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나에게 미래가 있을까?...'


자리에 누운 지 2시간이 지나도록 잠은 안 오고, '30살까지만 살고 다 끝내자'는 생각에 이르는 순간 불안이 엄습하자 머리를 흔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냅니다.


나미씨는 대학 때 술자리를 좋아해서 술은 제법 마시는 편이었습니다. 다만 주량 조절을 잘 못해서 취기에 선배에게 선을 넘는 말도 하고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다가 다음날 뼈저리게 후회하는 일이 제법 있었습니다. 요즘 들어 혼자 술 마시는 양이 늘다 보니 술에 취해 선을 넘는 실수는 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됩니다. 다음날 정신과에 갈 때 선생님께 술 마시는 습관을 고백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 진단이 하나 더 늘겠구나.'



담당 선생님은 뜻밖의 권유를 합니다.


쌤: 이나미 씨, 오늘 성인 ADHD 관련한 주의력 검사를 해보셨으면 해요.


나미: 네?


쌤: 실은 이전부터 평가를 권유하려고 고민 중이었어요. 지금까지 상담하면서 나미씨가 지금껏 말씀해주신 내용들에서 ADHD의 증상 특징들이 자주 보였거든요. 특히, 우울증이 좋아지고 나서도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이 늘 많다고 하신 것으로 보아 오래 지속된 일종의 성향 같아요. 제어가 안 되는 실타래 같이 얽힌 생각들이 머릿속에 꽉 차 있는 것도 ADHD의 중요한 증상이에요.


나미: 네. 맞아요. 이렇게 우울해지기 전에 대학생 때도 늘 머릿속이 복잡했어요. 그래서 친구들 만나서 신나게 떠들고 왔는데 이상하게 집에만 오면 기분이 처졌거든요. 그게 ADHD와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쌤: 그런 복잡한 생각들이 강박사고는 아니면서 특정 한 때만 나타나는 아니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ADHD가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부산하고 지나쳐서 산만해지는 질환이라고 알고들 계시는데요. 성인 여성에서는 나미씨 같이 내적으로 산만한 생각들이 집중을 방해하는 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나미: 아! 그럼 제가 자주 멍 때리고 있어서 주변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하냐고 물어볼 때가 많았는데 그것도 관련이 있겠네요?


쌤: 현명하시네요. 네! 맞아요. 실은 저도 나미씨 진료를 거듭할수록 잠깐 딴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지적하는 것은 아니고 평가를 위해 말씀드리는 거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으셔요. 나미씨가 진료 오실 때마다 예약시간에 2~3분을 늦으셨거든요. 시간 약속을 지키거나 시간 내에 어떤 일을 해내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ADHD의 증상일 수 있어요.


나미: (ㅜㅜ 표정) 네. 초등학교 때 아침에 못 일어나서 정말 자주 지각했어요. 준비물 찾다가 늦기도 했고요.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들이 무서워서 지각은 안 했지만 매일 매일 정문 앞에서 전력 질주해서 겨우 도착했어요.


쌤: 친구들과 대화할 때 혹시 대화 내용을 놓치지는 않았나요?


나미: (눈이 커지며)네. 네!! 자꾸 다시 물어볼 때가 많았어요. 저는 귀가 (청력) 나쁜 줄 알았어요. 친구들이 오정이라고 부르기도 했고요.


쌤: 수업시간에도 자주 흘려듣거나 딴생각할 때도 있었을 것 같네요.


나미: 네. 지루한 수업은 정말 머리에 하나도 남은 게 없었어요. 그러고 보니 좋아하는 과목은 정말 열심히 재미있게 들었거든요. 아, 좋아하는 남자 샘 수업은 정말 집중이 잘 되었는데 싫어하는 샘 수업은 아예 놔버렸어요.


나미: (한참 생각하더니)아..  이런 것들도 다 ADHD와 관련이 있었던 거네요.


쌤: 안타깝게도 그러네요. 좋아하는 것은 잘 집중하고 과몰입하기도 하는데 싫어하는 것은 정말 집중하기 어렵다고들 해요.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것도 특징이구요. 다음에 오실 때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부탁드릴게요. 나미 씨 세대에서는 나이스 대국민 서비스에 로그인해서 온라인 발급이 가능해요.


나미씨는 이렇게 선생님과의 문진을 통한 상담과 성인 ADHD에 대한 자가 설문, 생활기록부, 전산화 주의력 검사 결과를 토대로 ADHD를 진단받게 되었습니다.



나미씨는 초기 평가를 통해서 사회 불안증과 우울증을 진단받았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직장생활로 이행되는 시기에 갑작스럽게 부적응이 심해지고 성격이 변한 것 같다는 내용을 토대로 근본적인 원인을 쫓아가다 보니 최종적으로 ADHD를 진단받게 된 것이죠.


학창 시절 아마 ADHD의 증상이 친구 관계를 어렵게 하고 잠시 우울감과 함께 부적응을 겪을 때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사춘기에 흔히 겪는 방황이나 따돌림 등의 외부 문제 때문이라고 여겨져 평가 없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잠재된 ADHD의 증상은 직장 생활을 할 때 나미씨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자존감을 손상시켜서 사람의 시선과 평가를 두려워하고 회피하기에 이릅니다. 


사회 불안증과 우울증이라는 공존질환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 시간은 나미씨의 사례를 통해 학창 시절 숨겨진 ADHD 증상이 직장 부적응과 사회불안증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상기 사례는 진료를 받았던 특정인의 개인사가 결코 아니며 상당수의 성인 ADHD 진료 경험을 토대로 한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증상과 참고 문헌의 사례를 재구성하여 작성한 가상의 사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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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THE MEADOWS MALI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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