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위로

by 장은진

몇 년 전, 아주 많이 그리던 지인을 만나러 세종시에 갔었다. 사람 인연이 참 알 수 없다지만 우리가 알고 지낸 14년의 시간 동안 가까이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 사이의 깊음은 시간과 비례하지는 않는 듯하다. 잊은 듯이 각자의 삶을 살다가도 마음 한켠이 서늘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마음속에 그분이 떠오르니 말이다. 그날도 그랬다. 문득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가 그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요동쳤다.


"제가 내일 갈게요. 선생님 만나러."


그래. 마음먹고 내달리면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이런저런 핑계로 한참을 만나지 못했었다.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만나 함께 밥을 먹은 기억이 마지막인데, 그 아이가 열한 살이나 되어 이제 엄마가 없어도 잠시는 혼자 지낼만한 나이가 되었으니... 이번에는 꽤 홀가분한 마음으로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6년 만의 만남. 핸들을 돌리는 나의 손끝도, 흥얼거리는 노랫말에도, 차 안의 공기도,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오랜만의 만남이 어색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선생님과의 만남에는 어색함이란 단어 자체가 없는 듯하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만나 인사를 나누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어제 만났던 친구를 다시 본 듯 편안했다.


그리고 여느 날과 같이 차 한잔 하자며 들른 곳에서 묘한 감정을 마주했다.


좁은 돌계단을 몇 개 올라 넓은 정원이 있는 카페로 들어서는데, 나도 모르게 "선생님. 여기 너무 좋은 기운이 있는 곳인 것 같아요. 너무 좋네요." 하고 툭 내뱉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계단을 올라 땅을 밟고 자그마한 뒷산을 둘러보는데 땅이 나를 안아주는 듯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주문한 차를 받아 들고 큰 느티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과 겹쳐진 나뭇잎들이 한가득이다. 바람이 꽤 많이 부는 날이라 자리를 옮길까도 했으나,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스륵 스륵 스륵' 하며......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나무를 보면 그 경외감에 넋을 잃을 때가 있다. 나는 나무가 내는 소리에 완전히 몰입되어 그대로 머물렀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그냥 그래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용히 나를 위로해 주는 나무가 있었고, 나의 눈물도 만날 때가 되어 만났다며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선생님이 있었기에......


한참을 울고는 이야기를 꺼냈다. 6년 전 내가 선생님을 찾아와서 미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말이다. 나에게는 만나지 못한 아이가 하나 있다. 천사처럼 나에게 왔다가 7개월을 살고 하늘의 별이 된 아이... 6년 전 나는 그 아이를 떠나보내고 선생님을 찾아왔었다. 그때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라 그저 맛있게 밥을 먹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아주 좋은 식사를 대접해 주셨고, 그 밥은 나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그날......


"선생님. 저 그 아이를 기억에서 지우려고만 했어요. 내가 그 아이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잊으라고만 하니까 눈물을 꾹 참으며 잊었어요. 그렇게 보내줘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다 잊었다고 이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그 아이 생각이 날까요?"


고삐가 풀린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리고 떠오른 한마디가 있었다.


"더 많이 기억해 줄걸...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그랬다. 내가 그 아이 이야기를 하면 주변은 불편감이 가득했다. 어른들은 보낸 아이 이야기 자꾸 해서 좋을게 뭐 있냐며 말을 돌리셨고, 친구들은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그렇게 그 아이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런데 나를 안아주는 따뜻한 땅이, 그 위에서 어떤 세월을 버티며 살아왔는지 모를 커다란 느티나무가 나에게서 그 아이를 꺼내주었다.


죽음, 그리고 애도


슬퍼할 만큼 슬퍼하고 고이 접어 떠나보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것이 애도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는 그렇게 슬퍼하면 망자가 좋은 곳에 못 간다며 우는 나를 말리기도 했다. 그래서 참았다. 우리 아가 좋은 곳에 가라고...


그런데 나무가 나에게 말했다. 울어도 된다고... 그 아이를 기억해 주라고...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몰려왔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 아이는 얼마나 슬펐을까. 이제야 그걸 깨달은 엄마라서 너무 미안하다고, 너를 잊겠다고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엄마라서 너무 미안하다고, 이제는 너를 기억하고 너를 추억하겠노라며 한참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집으로 돌아와 그날 밤, 남편과 한참 동안 그 아이를 추억했다. 우리의 둘째아가 여름이. 그 아이의 이름은 여름이었다. 뜨거운 햇볕아래 찾아온 아이라서, 우리의 소중한 열매라서 열음이란 뜻을 담아 여름이란 이름을 지어주었었다. 그 아이와 함께했던 행복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며 밤새 울다 웃었다.


속이 후련했다. 애도한다는 것, 그것은 그 아이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가 떠남을 진정으로 슬퍼하고, 떠난 그 아이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일이 진짜 애도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요즘도 길을 가다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는 나무를 보면 괜히 그 옆에 서서 머물러본다. 슬쩍 나무줄기에 손을 가져다 데며 나무의 소리를 느껴보기도 한다.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 나만의 착각을 아닐 거야.


"안녕. 나무야. 넌 어떻게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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