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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Mar 02. 2024

타산지석 또는 롤 모델, 나의 선생님들

내가 교사가 된 이유

어린 시절 수영과 유아체육을 겸하던 YMCA에 다닌 적이 있다. 일 년에 네 번, 한 분기가 끝날 때마다 메달을 수여하는 수료식이 이뤄졌는데, 내가 시상대에서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우리 어머니는 우리 딸이 왜 저럴까 무척 속상하셨다. 어쩌겠는가, 남들 앞에 서면 머리가 하얘지고 두 손이 덜덜 떨리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인걸.

우산장수 짚신장수 어머니처럼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걱정, 햇볕이 쨍쨍하면 무더워서 걱정, 소심하고 걱정 많은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이런 감정 근본적인 기원을 따라 올라가면 나의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과 만나게 된다.

그림도 잘 그리고 피아노도 잘 치고 공부까지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잘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한글을 다 떼고 입학한 아이들, 구구단을 다 배우고 수업에 들어오는 친구들 가운데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나는 늘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공부도 잘 못해서 나머지 공부를 하던 기억도 생생하다. 친구들은 다 집에 가는데 나만 남아 있는 그 기분은 진짜 외로웠다.

가장 속상하고 충격적인 사건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어났다. 우리 학교는 글짓기 대회를 매년 열었고 나는 운문부문을 선택하여 고심고심 동시를 지어냈다. 그 일에 대해 잊고 지낸 지 얼마 후 담임 선생님께서 글짓기 대회 장원 수상자가 우리 반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순간 긴장이 되었다. '혹시 나일지도 몰라!'

"이번 글짓기 대회 1등 상은 이○현!" 아이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월요 방송조회시간, 그날의 방송은 글짓기 대회 우수 작품을 소개해 주는 시간이었다. 방송을 보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상작품 중 내 뒤의 친구의 작품이 내가 쓴 동시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행의 "더욱 즐거운 음악 시간"이 "미술시간"으로 바뀌어 있는 것 빼고는.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가 매일 양 갈래머리로 곱게 묶어서 학교에 보내주던 예쁜 옷을 입은 그 아이는 내게 메롱, 혀를 쭉 빼고 웃는 것이었다. '아, 얘는 어떻게 내 것을 베껴 놓고도 저리 당당하지?'생각했다.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는데 또 한 반이 된 그 아이는 키 번호도 앞뒤였다. 그 친구는 결국 내가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아이가 되었다. 줄을 설 때마다 내 머리를 툭툭치고 메롱을 하던 애라 친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자기가 잘못을 하고도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에 열불이 났다.

집에 와서 펑펑 울면서 엄마에게 오늘 일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한눈에 봐도 상황 파악이 끝난 상태, "네가 전학을 가지 않는 한 담임선생님께 왜 이렇게 된 일이냐 따져봐도 너만 더 미움을 받을 뿐이야. 속상해도 어쩌겠니."

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세상을 알아버린 기분이었고 시니컬한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발령 초반, 롤케이크 사이에 감사의 표시라는 허울좋은 명목으로 숨겨져 있던 상품권을 다시 되돌려 보내며, 예전 나의 담임 선생님께서 이래서 그 친구 것만 읽어 보셨구나 짐작하게 되었다. '똑같은 내용이 두 개 있으면 두 친구를 불러 물어보는 게 맞지 않나?' 싶었던 의문도 해결되었다. 내 작품은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거다. 후보군 사이에 있지도 않았을 거다.

괴로웠던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으로 올라간 그날, 나는 처음으로 자유함을 느꼈다. 교실의 공기부터 상쾌한 그 기분! 3학년 시절 나는 다짐했다. '나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학교에서 지내는 그 시간, 우리 선생님처럼 웃음이 많고 기쁨이 넘치는 그런 사랑을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보여주어야지. ' 생각했다.

불과 한 해 전에는 학교에 가는 것이 그렇게 싫었는데, 매일매일 학교 가는 발걸음이 그리도 가벼울 수가 없었다. 6학년 때 방학 숙제로 냈던 독후감이 계몽사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우수상을 타서 우리 학교로 상장과 부상이 왔다. 방송실에서 교장선생님께 상을 받고 교실로 돌아가려는 복도에서 만난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나를 꽉 안아주시며 "네가 이렇게 잘할 줄 알았어! 넌 어렸을 때부터 일기도 글짓기도 잘했잖니!"라고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주셨다. 치맛바람이란 1도 없었던 우리 집 사정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어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그분,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

아직도 나는 교실에서 내가 만났던 은사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순간순간 나오는 나의 모습 속에 그분들의 잔상이 남아있다. 타산지석이 되기도 롤 모델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나의 동료들의 모습에서 많이 배운다.

아이들과 사랑을 주고받는 그 모습은 옆에서 구경만 해도 참 아름답다. 한 해 동안 감사했다며 수줍게 편지를 내미는 아이들, 그리고 쑥스럽게 고마움을 전하는 선생님. 귀요미 옆에 또 귀요미!

싱글벙글, 얼굴 가득 웃음꽃이 핀 옆자리 선생님께 물어본다. 오늘은 어떤 친구들이 우리 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나요?

 "오늘의 우주대스타는 이 아이였어요. 어쩌면 그렇게 피아노를 잘 치는지, 모든 아이들이 다 앙코르를 외쳤다니까요!"

학기말 작은 음악회를 준비하며 반마다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영상을 편집하며 수고를 전혀 수고스럽게 여기지 않는 나의 사랑하는 선생님들!


점심을 먹으면서도 오늘 만났던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까먹을세라 이야기하는 이들의 반짝이는 모습에 나는 또 감동한다. 예전에는 내가 되고 싶지 않았던 교사의 모습을 내 마음속에 아로새겼다. 타산지석이자 반면교사이자 롤모델이었던 나의 선생님들, 이제는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귀히 여기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교사가 되어보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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