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나빌레라'에 보면 주인공 심덕출 할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들리는 발레음악소리에 이끌려 발레 스튜디오에서 홀로 연습하는 발레리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평생을 우편배달부로 근면 성실하게 가장의 역할에만 충실하던 70살의 할아버지는 사실 발레를 사랑하는 발레 애호가였던 것. 가난하던 꼬마 시절 극장 문 앞에서 훔쳐보던 백조의 호수 속 무용수들이 너무 멋있어서 아버지에게 무용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가 어려운 형편에 무용은 무슨 사치냐며 혼나던 그 할아버지는 일흔에 발레복을 처음 입고 기본 동작부터 노쇠한 몸을 이끌고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면서도 즐거워한다. 드라마 마지막 자막은 정말 촌철살인이다.
'70세 할아버지도 해냈습니다. 무엇인가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심덕출 할아버지가 수십 년 발레를 사랑하며 발레 공연 티켓을 모은 스크랩북을 소중히 간직하듯, 나는 평생 음악 애호가였다. 물론 공연장에 열심히 찾아다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끔씩 티켓을 사들고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도 가서 클래식 공연도 보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은 테이프가 끊어지도록 듣고.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다양한 음악을 구독하며 출퇴근 시간은 언제나 라디오 음악방송과 함께였다. 가끔씩 감상하다 듣기 좋은 음악이 있으면 뚱땅뚱땅 피아노도 쳐보고 교실에서 리코더도 불어봤는데....
나빌레라 드라마가 끝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수업할 때도 음악이 제일 재미있고 말이다. 그럼 음악 중에 감상 말고 제일 접근성이 좋은 악기가 무엇인가 살펴보니 교실 책상 옆 굴러다니는 만 오천 원짜리 리코더가 떠오른다. 그거네? 나빌레라의 주인공 덕분에 나 역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기회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