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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Jul 07. 2023

빵이 주는 위로, 가짜 위로

빵순이의 고백

나는 자타공인 빵순이이자 탄수화물러버였다. 빵과 떡, 초콜릿이 주는 위안과 안식! 빵지순례를 다니는 것이 내 삶의 기쁨이었다. 엑셀로 표를 만들어 지역별, 권역별로 유명하다는 빵집을 정리하여 쉬는 날, 대표 메뉴, 함께 가야 할 빵집까지 적어 놓고 하나 둘 도장 깨기 하던 사람이 바로 나다. 세상의 모든 일에 전투적으로 임하듯 빵 먹기에도 최선을 다했었다.


친구들은 내게 어느 동네에, 무슨 빵집을 가야 하냐고 물어본다. 빵에 관한 한 나는 제일가는 쩝쩝 박사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퍼센트로 표시하자면 뇌구조의 대부분은 빵이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빵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이 주는 위로는 즉각적이고 강렬했다. 바로 나온 따끈한 빵을 결대로 뜯어먹으며 현실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마카롱, 베이글, 스콘, 바게트, 식빵  마지막으로 발효빵에 이르기까지 그 순서에 차이만 있을 뿐이지 빵에 대한 나의 사랑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 기간이었던 2019-2020년은 빵이 전부이던 시기였다. 내 삶의 의미이자 목표였던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부유하며 지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절이었다.


살고 싶어서 사별가족 모임을 두 개씩 나가고 헬스장에 등록하여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정신과 의사와 심리 상담사를 찾아 일주일 스케줄을 빡빡하게 만들었다. 도서관에 가서 애도라는 글자가 있는 책은 전부 다 빌려봤다. 그래도 너무 슬프고 힘들었다. 해결되지 않은 채 뻥 뚫린 가슴을 안고 형벌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이렇게 남은 세월을 숨만 쉬고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일 묻고 또 물었다. 나는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내 마음속에 슬픔과 괴로움이 가득 찼다.


신에 대한 분노와  나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 왜 그랬어야만 했냐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벌을 받아야 하냐고, 이건 옳지 않다고 수없이 외쳤다.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눈물이란 것도 누울 자리 보고 나오는 거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건 그래도 어느 정도 내가 나아진 상태여야 가능하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매일 코로나 뉴스가 한창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집 밖으로의 외출을 금하는 것이 내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나에게 벌어진 이 어이없는 상황에 비하면 전염병의 창궐 정도야 뭐 그렇게 대수란 말인가. 영화보다 드라마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이 내게 벌어진 거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스스로 머릿속의 차단장치를 내려서 희로애락의 분노와 슬픔을 못 느끼도록 통제한다고 한다. 괴로움과 슬픔을 느끼는 게 스스로도 버겁고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희로애락 모두가 다 '절연'된다는데 있다. 슬픔과 분노뿐 아니라 기쁨도, 즐거움도 모두 느낄 수 없는 좀비 같은 나날이었다.


과연 내게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의문스러웠다. 매일 웃으며 살아가던 내가 상실을 경험하니 얼굴에 어떤 근육을 써야 미소를 지을 수 있었나 기억나지 않았다. 과연 내가 다시 웃을 일이 있을까 의아했다.


빵을 먹는 일은  내가 나에게 주는 일종의 치료제였다. 기분이 속상하거나 울적하면 어김없이 빵을 찾았다. 나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었다. 빵을 먹는 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과식과 폭식으로 몸무게는 계속 올라갔다.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천근만근이었으나  당장 입 속의 즐거움은 달콤했다. 도저히 의지로 끊기 어려웠다.


요즘 나는 빵에 그리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이를 대체할 수많은 행복 대체재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어디에도 마음 붙이지 못했던 내게 하고 싶은 일, 몰두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들이 생긴 것이 기적 같다. 그렇게도 찾고 싶었는데 찾아지지 않았던 내가 마음 둘 수 있는 일! 리코더를 만나고 나서 내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리코더가 빵을 이겼구나."


난 이제 안다. 빵은 내게 달콤하기만 한 '가짜 위로'였다는 것을. 폭식과 과음은 내가 평생 조심해야 할 습관이다. 하지만 리코더가 있어서 그리 걱정되지는 않는다.


리코더를 불면서 나는 내가 왜 빵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대충 알 수 있었다. 내게는 그 어떤 엔도르핀도 세르토닌도 나올 통로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은 동물과 달라서 내 마음을 토로하고 감정을 표현해야 살아갈 수 있다. 빵 먹기는 말 그대로 일차원적인 해소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고등사고능력을 가진 사람이니 더 높은 가치의 위로가 필요했다. 리코더를 배우며 음악 안에서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과정을 경험하며 낮은 수준의 차원에 위로와 고차원적인 위로의 다른 점을 맛본 것이다. 한번 높은 수준의 위로를 경험하니 더 이상 빵을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리코더를 배우며 나는 음악이 주는 치유적 효과를 직접 경험했다. 리코더를 불면 엔돌핀이 나온다. 낮은 알토리코더의 소리는 사람 목소리와 비슷한 주파수이기 때문에 부드러운 아빠의 목소리 같다. 목관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음색은 자가치유제의 효과를 준다. 바로크 시대 리코더곡은 명랑한 악장과 멜랑꼴리 한 악장이 교대로 일어난다. 마치 인생의 과정처럼 말이다. 이 시기를 잘 버티면, 숨이 붙어만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웃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매일 리코더 연습을 하며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상비약을 얻었다.


웃는 법을 잃어버린 내가 다시 웃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리코더에게 정말 고맙다. 나이가 들어서라도 내 곁에 리코더가 있다면 그다지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리코더를 만난 건 내게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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