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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Jul 05. 2023

시절인연

모든 것은 변화한다. 나도 그렇다.

초등교사의 삶은 끊임없는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나는 사람에게 정을 주는 것도, 정을 떼는 것도 어려운 사람이다. 아이들과 한 해 동안 함께 삶을 살다가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내야 할 때, 나는 꼭 눈물이 난다. 아이들은 울지 않는데, 나만 슬프다.


아이들도 그렇지만 한 해 동안 매일 함께 지내던 같은 학년 선생님과 헤어지는 일도 정말 아쉽다. 힘들고 지칠 때 위로해 준 마음들,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순간들을 모두를 추억으로 묻어야 한다는 것이 속상하다. 환하게 웃으며 시시콜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 모습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도. 가끔 방학 때 보거나 그마저도 어려우면 몇 년에 한 번, 운 좋으면 만날 수 있는 그런 관계. 또 새로운 만남에 적응하여 처음 만난 선생님들과 웃으며 협력하며 지내야 하는 것이 내성적인 성격에는 참 힘든 일이다.


혹자는 낯을 가리는 나의 모습을 처음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며, 내가 무척 활발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이야기한다. 사람 사이의 어색함을 참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에 그럴 것이다. 공기 속에 흐르는 정적을 견딜 수 없어, 뇌를 풀가동 시켜 오디오가 비지 않도록 말을 한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런 오해를 할 만도 한다. 나는 무지 어색해서 그러고 있는 거다.


이 일을 하면서 점점 더 외향적으로 보이는 성향이 된 것 같다. 내면은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은데, 얼굴은 웃음을 지고 있고, 입은 말을 하고 있다. 친구들은 이런 나에게 '다중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좋게 말하면 내 안에 다양한 모습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쓰지 않아도 될 에너지를 너무 끌어다 쓴다. 나중에 상처받을까 봐 마음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 모습을 본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나고 나면 늘 방전이 된다. 친구들도 3명 이상 그룹으로 모이면 힘들다. 셋 이상이 보내는 메시지를 계속 해석하느라고 피곤하다. 어쩌면 회사 생활은 더욱 어려웠을 수도 있다. 교실에서 나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행하는 독립적인 일이 나에게 더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명이 모이면 그들의 집단이 주는 에너지에 나는 기가 눌린다. 혼자 조용히 나를 내버려 두고 싶다.


가끔씩 지나간 제자들을 복도에서 만날 때, 예전 학년 선생님들을 교무실에서 만날 때, 나만 반가운가 싶어 멋쩍을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텐션이 높고, 목소리도 크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온도와 상대방의 온도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땐 좀 민망한 기분이 든다. 나만 좋아했었나? 괜히 손해를 보는 기분도 든다. 흐음.


mbti 검사를 하면 INFP 나온다. 내향성과 외향성은 거의 비슷하지만 감성, 느낌을 중시하는 편인 것. 거기다가 알파벳 뒤쪽을 보면 FP가 즉, 사람을 좋아하고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에게 받는 영향, 감정, 기분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동기가 된다.


또한 나는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가지고 있다. 그때의 분위기, 장면, 시간, 말들이 사진처럼 찍힌다. 아이들과 함께 하던 순간들,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나눈 이야기가 의식하지 않아도 머리에 폴더로 정리되어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더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는 것인가 생각도 해본다.


아이들이나, 동료 교사와의 관계에서 언제나 끈끈함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삶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고, 나도 변하고, 상대방도 변한다. 흘러가는 대로, 흐르는 대로. 이 진리를 깨달아야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지나간 세월 속 박제된 기억에 잠식되어 있는 나의 모습을 본다. 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 지나간 인연에 얽매지 않고, 다가올 인연에 반갑게 손 흔들어야 할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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